영속성과 단편 서사와 암묵지에 대해
원하면 하게 된다
사람은 원하면 하게 된다는 생각을 한다. 트랜스포머 인공지능 모델의 화려한 발전 속 우리가 AI로 무엇을 하는지를 보면서 이 명제를 되돌아보고 있고, 글을 쓰는 시점에서의 최근 북한이 2023년 적대적 두 국가론을 공식화한 이래로 1953년의 정전협정이 존중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관점으로 곱씹는다. 원하는 것만으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의미한 것도 아니다. 쿠빌라이 칸은 그와 그의 국가 권력이 정점을 향할 때 고려 원종에게 영원히 동방의 번국이 되라는1 기록된 표현은 “永爲東藩,以揚我休命”로, 고려사 세가, 원종 원년 4월에서 등장한다. ↩ 내용을 조서에 담았으나, 100년이 채 지나지 않아 반원정책이 추진된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에는 대한제국의 주권이 영원히 양도된다는 표현2 조약의 첫 조항이 다음과 같다. “韓國皇帝陛下ハ韓國全部ニ關スル一切ノ統治權ヲ完全且永久ニ日本國皇帝陛下ニ讓與ス(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 을 담았지만 겨우 35년 만에 유명무실화된다. 원해서 긍정하고, 원해서 부정한다. 많은 노력으로 상수를 증류할 수도 있고, 헤게모니라는 같은 원리로 그 효력을 파기할 수도 있다. 허황된 얘기지만 아무리 영원토록 각인시키고 싶어도 F1끼리 서로 도장을 찍고 사인을 하고 악수할 때의 긴장감, 맥락은 F2 이래로 점점 희미해지다 잊힌다. 그 속도가 한 세대로서는 느리게 보여 체감이 어려울 뿐이다.
단편 서사의 함정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서사구조는 하나의 사고방식 표준이다. 범죄자가 판결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면 보통 권선징악과 정의구현을 연상하고, 이를 반면교사삼아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아야 한다는 함의를 새기고, 보통은 그 지점에서 사건에 대한 이해를 마치고 책을 덮는다. 그게 특별히 이상한 건 아니더라도 이런 태도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 물리적 시간선에는 기점과 종점이 없다. 둘, 현실은 평면적이지 않다. 예컨대 형벌을 집행했다고 해서 범죄를 가능케 한 사회적 조건이 개선된 것도 그 피해가 회복된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 지속성과 제도의 효용성을 고찰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사회에 미칠 영향을 예상해야 한다. 또한, 권선징악은 사상일 뿐 물리법칙은 아니므로 가해자를 우리와는 다른 사회악으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을 역행하여 행위의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재발 방지의 단서를 찾아야 한다.
이건 미담도 다르지 않다. 성공담, 영웅담, 위인전은 보통 좋은 면만을 부각한다. “내가 이렇게 해서 위험을 딛고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할까? 실제 사람의 삶은 훨씬 입체적인데 말이다.3 여기서 유발 하라리의 견해를 인용하고 싶다. 그는 진실은 조사와 검증이 필요하고, 대체로 복잡하며,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은 반면 허구는 그냥 쓰면 되고, 원하는 만큼 단순하게, 듣기 좋게 쓸 수 있어 진실과 허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진실이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마치 음모론이라도 정당화할 것 같은 대목이므로 경계해서 들을 필요는 있지만, 경험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서사는 진실보다는 허구에 가까울 것이다. 그의 발언은 WIRED 인터뷰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다. ↩ 자력의 성공이 아닐 수도, 반쪽짜리 성공일 수도, 타인의 관점에서 완전히 비도덕적인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국사 최고의 위인은 누구일까, 시대에 따라 다르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보통 세종대왕과 이순신을 꼽는다. 한국사에서 최고 성과를 낸 사건은 무엇일까, 마찬가지로 현대사회에서는 훈민정음 반포나 살수대첩, 명량대첩 등을 뽑는다. 한국 사회가 귀하게 여기는 이런 것들이 사실 과대평가되었다는 실없는 논리를 펴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가 마주하는 것이 가지치기를 하고 잔털을 다듬어 완성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미담과 악담을 구분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진 사건, 기록된 표현의 원문, 물자와 인력과 자금의 장부상 동선 등 족적의 원형을 살피려는 노력을 들이고, 각자 의의를 찾는 쪽이 낫다.
모호함과 암묵지
언어적 한계가 크게 와닿는 요즘이다. 우리는 ‘제대로’, ‘명확히’ 같은 표현을 즐겨 쓰지만 뭐가 제대로인 건지, 뭐가 명확한 건지는 미뤄두고 표현을 먼저 집어 접시에 담는다. 사건을 제대로 규명하라는 등의 흔한 정치적 수사부터 정말 잘 만든 영화라는 막연한 감상, 그렇게 말고 더 잘 해보라는 게으른 LLM 프롬프트까지 쉽게 남발된 부사는 저도 모르게 모호함을 남긴다. 이와 관련해 2026년 중후반을 지나는 지금 인공지능 사회로 이행하면서 각광받는 것이 있다면 도메인 지식, 그중에서도 암묵지다. 경험으로 빚어진 내면의 지식, 감각. 혹자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 때 진짜 이해한 것이라고 하지만 그건 충분조건이지 필요조건은 아니다. 이를 우리 언어생활에 대입하면 서로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각자 다르게 이해한다는 식이 된다. 여기서 인용하고 싶은 건 한 개의 일화다.
제가 제 일을 가지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너무 많이 깎으면 헐거워서 튼튼하지 못하고, 너무 적게 깎으면 빡빡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도 덜도 아닌 적절한 정도는 손에서 얻고 마음에서 응하는 것이어서, 입으로는 말할 수 없는 기술이 그 사이에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제 아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고, 제 아들 또한 제게서 배울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이 되도록 직접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 역시 전할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임금께서 읽으시는 것도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4 장자 외편 천도편에 등장한다. 대화문 일부를 잘라 발췌했으며, 번역본은 저작권상 권위있는 학자, 도서 대신 다듬어진 AI 기반 번역을 출처로 사용했다. 인용한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輪扁曰:「臣也以臣之事觀之。斲輪,徐則甘而不固,疾則苦而不入。不徐不疾,得之於手而應於心,口不能言,有數存焉於其間。臣不能以喻臣之子,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是以行年七十而老斲輪。古之人與其不可傳也死矣,然則君之所讀者,古人之糟魄已夫!” ↩
1966년 마이클 폴라니는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5 사실 암묵지를 소개할 땐 이쪽을 더 잘 인용하는 듯하다. 암묵적 차원 제 1장에 등장하며, 원문은 “I shall reconsider human knowledge by starting from the fact that we can know more than we can tell.” ↩ ”라며 비슷한 견해를 내보였다. 어느 쪽이 암묵지를 더 잘 소개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를 거꾸로 엮으면 우리는 말할 때마다 손실을 본다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이 관점에서는 언어는 일종의 샘플링에 불과하고, 문장을 더 정교히 구성해볼 수는 있지만 의미론적 수렴에 그칠 뿐 머릿속 형이상을 문자로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이 부분을 언어적 모호함과 연결짓는 이유는 우리의 소통 한계를 짚기 위해서다. 예컨대 “당신이 말하는 그것은 무엇인가”라는 소크라테스식 화법, 그 자체로서는 주장의 공백을 개선하는 정석이지만 오용하면 정당한 문제제기로 위장한 채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식으로 변질된다. 이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까? 뉴럴링크가 보급되기라도 하면 모를까, 아직 우리 현실에는 언어만한 게 없다. 그렇다면 좀 재미는 없더라도 한계를 인지하고 마음을 배려에 쓰는 것이 최선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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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된 표현은 “永爲東藩,以揚我休命”로, 고려사 세가, 원종 원년 4월에서 등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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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의 첫 조항이 다음과 같다. “韓國皇帝陛下ハ韓國全部ニ關スル一切ノ統治權ヲ完全且永久ニ日本國皇帝陛下ニ讓與ス(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부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국 황제 폐하에게 양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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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유발 하라리의 견해를 인용하고 싶다. 그는 진실은 조사와 검증이 필요하고, 대체로 복잡하며,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은 반면 허구는 그냥 쓰면 되고, 원하는 만큼 단순하게, 듣기 좋게 쓸 수 있어 진실과 허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진실이 불리하다고 주장한다. 마치 음모론이라도 정당화할 것 같은 대목이므로 경계해서 들을 필요는 있지만, 경험적으로는 동의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서사는 진실보다는 허구에 가까울 것이다. 그의 발언은 WIRED 인터뷰에서 원문을 확인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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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 외편 천도편에 등장한다. 대화문 일부를 잘라 발췌했으며, 번역본은 저작권상 권위있는 학자, 도서 대신 다듬어진 AI 기반 번역을 출처로 사용했다. 인용한 부분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輪扁曰:「臣也以臣之事觀之。斲輪,徐則甘而不固,疾則苦而不入。不徐不疾,得之於手而應於心,口不能言,有數存焉於其間。臣不能以喻臣之子,臣之子亦不能受之於臣,是以行年七十而老斲輪。古之人與其不可傳也死矣,然則君之所讀者,古人之糟魄已夫!”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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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암묵지를 소개할 땐 이쪽을 더 잘 인용하는 듯하다. 암묵적 차원 제 1장에 등장하며, 원문은 “I shall reconsider human knowledge by starting from the fact that we can know more than we can tel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