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없이 작성한 AKG N5 일주일 사용기
2024년에 AKG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줄로만 알았던 AKG가 신제품을 발표했습니다. 올초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출시되지도 않은 제품이 AKG N5 하이브리드라는 이름으로 디자인 상을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존재감을 알리더니 7월 초 AKG의 새 제품이 출시됐습니다.
불만족스러운 첫인상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소재와 만듦새입니다. 우선 소재는 꽤나 저렴한 느낌이 있습니다. 전작 AKG N400은 금속을 사용했던 것 같은데, 아마 제가 느끼기로 AKG N5는 QCY인가 싶을 정도로 별다른 처리가 없는 플라스틱 덩어리네요. 덕분에 가볍긴 하지만 중후한 멋은 없습니다. 힌지의 경우 살짝 쫀쫀하면서 찰랑거지도 않는 평범한 힌지로 손에 가볍게 쥐고만 있어도 조금씩 삐걱이는 느낌이 있습니다.
이어버드는 두툼한 편입니다. 왼쪽과 오른쪽에 각각 AKG 로고와 제품명이 프린트되어 있으며, 특이하게 좌우구분을 위한 점자가 이어버드에 양각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어팁 퀄리티는 나쁘지 않지만 타원형의 독자규격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서드파티 이어팁과의 호환성이 떨어집니다. 비슷한 형상의 버즈 프로 1세대나 EO-IC500 등의 이어팁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만듦새를 살펴본 다음에는 이어폰을 연결해봤습니다. AKG N5는 AKG Headphones라는 어플을 통해 조작하는데, 색상 조합만 다를 뿐 UI가 JBL가 개발한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AKG보다는 JBL의 느낌이 납니다. 노이즈캔슬링과 주변소리듣기 모드 등의 아이콘은 JBL에서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디자인이고, SilentNow, Personi-Fi 등 JBL에서 지원하는 기능이 이곳에도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제공됩니다. 덕분에 기능의 가짓수는 부족하지 않으나 내가 AKG 제품을 쓰고 있다는 느낌은 다소 희석됩니다.
부족한 소프트웨어
가장 문제가 되는 점으로, 제품의 동작이 굼뜨고 답답합니다. 터치를 인식하는 속도는 빠른 편이지만 입력을 받고 노이즈 캔슬링이나 주변소리듣기 등 다른 모드로 전환되는 속도가 상당히 느립니다. 이어폰을 연결하는 과정 자잘한 이슈가 잦은 편으로 한 쪽 이어버드가 연결되지 않거나 아예 연결이 잘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세부적으로는 다음의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 본체와 블루투스 연결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플 자체적으로 연결을 시도하면 강제종료가 일어남
- 이어폰을 연결했을 때 노이즈캔슬링이나 제스처 등 설정값이 초기화되는 경우가 있음
- 이어폰 기능을 변경한 경우 변경 상태가 즉각 반영되지 않고 그 이전값과 혼동되며 나타남
- 이어버드을 크래들에 넣고 닫았음에도 불구하고 블루투스 연결이 끊기지 않은 경우가 종종 일어남
하만을 인수한 삼성은 그 덕을 잘 보았는데 하만은 삼성으로부터 지원을 잘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연결과 이어버드 동작에 한해서는 에어팟이나 갤럭시 버즈에 비해 뒤떨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직 개발중인 제품이 조급히 출시된게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다만 윈도우 PC와 연결할 때에는 함께 재공되는 동글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무선 이어폰들에 비해 유선이어폰 수준으로 쉽고 빠르게 연결할 수 있었습니다.
2024/10/22 수정!
최근 v4.2.0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거치면서 연결성은 꽤 개선되었습니다. 굼뜨기는 하지만 연결과 관련한 당혹스러운 동작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단, 여전히 초기 연결이 불안정하거나 연결이 끊겨야 하는데 끊기지 않는 답답한 모습을 보입니다.
음질이 매우 좋았다
첫인상이 꽤나 실망스러웠던 차에 꽤 감동적이었던 부분입니다. 음향에 대해 아는것이 없기 때문에 음색이라 소리 성향 등등에 대해 더이상 명확히 표현할 수는 어렵지만, 인상을 간략히 정리하면 소리에 대한 신뢰도가 충분히 있습니다. 처음에는 생각보다 평범하다고 느꼈으나, 고해상도 오디오 옵션을 활성화하고 코덱을 LDAC로 변경, EQ를 변경하자 정말 좋은 소리를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해상력이 좋은데, 조금 과장하자면 이런 소리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안 들리던 소리가 납니다. 전반적으로 정확하고 시원하며, 각각의 음이 잘 분리되어 전달됩니다.
하나 특기하고 싶은 점은 고해상도 오디오 옵션을 활성화한다고 해서 코덱이 LDAC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이 기능을 활성화하고서도 블루투스 설정 창에서 LDAC 옵션을 활성화한 뒤 경우에 따라 개발자 옵션에서 LDAC 코덱의 비트레이트를 자동, 또는 330kbbs/303kbbs부터 990kbbs/909kbbs까지 중 하나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평범한 노이즈캔슬링
노이즈캔슬링은 좋다는 평가가 많아 기대했으나, 실제로는 여러 리뷰어의 측정치가 보여주듯 아주 훌륭하지는 않고 준수한 수준입니다. 진동이나 기계 소음과 같은 저음은 잘 지워주지만 사람 목소리, 안내방송 등 고음에는 효과적이지 않으며, 화이트노이즈는 전혀 거슬리지 않게 조금씩 들려오는 수준입니다. 노이즈캔슬링 관련해서는 다음의 기능을 제공합니다.
- 어댑티브 ANC: 적응형 소음 제거 모드입니다. 이 기능을 활성화할 경우 주변 소음에 따라 강도가 유연히 조절되며, 비활성화할 경우 강도를 7단계에 걸쳐 조절할 수 있습니다.
- 자동 보정: 착용 상태에 따라 노이즈캔슬링 정도가 조절됩니다. 활성화할 경우 노이즈캔슬링 강도가 소폭 개선됩니다.
나쁘지는 않지만 가격대와 출시시기를 고려할 때 노이즈캔슬링 강도를 최대로 설정하고 자동 보정 기능을 사용하더라도 이전에 사용하던 버즈 2 프로와 큰 차이가 없다는 인상을 받아 개인적으로는 아쉬웠습니다.
우선은 사용해보기로
2024년에는 좋은 음질과 노이즈캔슬링을 제공하는 제품이 이미 넘쳐납니다. 그런 상황에서 AKG N5 하이브리드는 사회적 주목을 받아내거나 작은 혁신으로 반향을 일으키는 제품은 아닙니다. 점점 잊혀져가는 브랜드에서 오랜간만 출시된 아웃사이더 제품으로서 AKG N5가 제시할 수 있는 장점은 브랜드 벨류가 있다는 것과 음질이 준수하다는 것 뿐이죠.
그래도 저는 AKG가 좋습니다. 4년만에 AKG 로고가 각인된 제품을 사용해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반갑게 느껴집니다. 단점이 생각보다 많은 제품인 것 같지만 그래서 우선은 잘 사용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