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존 윅 시리즈의 완성형 스핀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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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존 윅 4에서 대서사가 마무리되는 것을 보고 존 윅의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아쉬움은 있지만 존 윅 시리즈는 더 이상의 수정 없이, 이대로 완결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역시나, 차기작 소식이 들리기는 했지만 본편에 대한 후속작이 아니라 스핀오프였다. 스핀오프 작품이 나온다는 것은 존 윅 시리즈가 가진 기대와 인기에 제작진이 부흥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움직임인 것처럼 들렸고 사실, 실망스럽게도 무리한 스핀오프로 프랜차이즈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줄 알았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 제작진은 보여주고 싶은 것이 아직 남아있다. 시리즈는 아직 완결되지 않았다.
놀랐던 것은 발레리나가 이전 존 윅 시리즈를 훌륭히 계승한다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서사와 주제를 계승하는 존 윅 시리즈의 특징까지도 고스란히 옮겼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장면은 1편을, 2편을, 그리고 나머지 3편과 4편을 생각나게 한다. 이전의 설정을 직접 참조하는 장면도 있지만, 간접적으로 비틀어버리는 장면도 많다. 예를 들어, 사냥을 위한 물건을 보여달라는 이브의 요구에 숨겨진 무기고로 안내해 AR15와 베넬리 M4를 추천하는 총기상의 모습은 의심 없이 2편의 총기 소믈리에 장면에 대한 오마주지만 이제 디저트로 나이프를 주는 건가 싶을 때 총알이 문을 뚫고 먼저 날아든다.
계승이라는 표현은 딱딱한 이유만으로 고른 단어가 아니다. 세계관에 대한 점진적 확장, 담백한 건짓수, 복수의 인과적 연쇄성, 규칙Rules과 결과Consequences에 대한 강조까지, 덧붙이자면 사소하게는 성인의 오락문화와 문화예술을 잊지 않고 묘사하는 것까지 영락없이 닮았고 또 전작을 연상하게 한다. 의미없는 반복이라면 감점요인이지만 〈발레리나〉는 의도적이다. 그래서 이브는 동료에게 배신당하지도, 최고회의의 규칙을 어기지도 않았지만 복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존 윅과 같이 사방에서 몰려드는 적을 혼자 처치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 시리즈가 인기가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신선한 액션이다. 흔들리지 않는 카메라 움직임, 롱테이크, 치밀한 장탄수 계산 등 다른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액션은 존 윅 시리즈가 갖고 있는 고유의 키워드다. 놀랍게도 이 점까지 〈발레리나〉는 프랜차이즈에 대한 먹칠 없이 훌륭하게 답습한다. 사실, 액션만을 놓고 보자면, 시리즈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으로 〈발레리나〉를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다. 전작의 까다로운 규범을 모두 고스란히 답습하면서도 고무탄과 3D 프린팅 권총, 맨손 수류탄 액션, 칼 대신 스케이트, 화염방사기 근접전투 등 영화가 보여주는 신선한 아이디어로 액션을 빼곡히 채운다. 주인공 이브가 존 윅이 아니기에 그 화려함 속에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덤이다.
영화가 이전 시리즈의 성과에 의지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특기하고 싶다. 〈발레리나〉 이브의 서사는 전작이 쌓아 올린 세계로 진입해서, 세계관을 잠시 훑어보다가, 금세 이탈한다. 존 윅이나 윈스턴, 그리고 루스카 로마의 디렉터 등 우리가 알던 원로는 이브에게 제한적인 영향만 줄 뿐이다. 비슷하게, 뉴욕 컨티넨탈 호텔 같은 상징적 장소를 제외하자면 로마나 오사카 컨티넨탈 호텔처럼 ‘사냥꾼’ 총기상과 힐슈타트 역시 〈발레리나〉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