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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생각 정리: 유교적 사고관

잠깐의 생각 정리: 유교적 사고관

유교와 실용주의

군군신신부부자자.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스러운 사회상을 타파하기 위한 해결책으로 공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다운 세계를 제안했다. 인(仁)과 의(義)에 기초해 인간사회와 인간관계에 대한 대우법을 예(禮)로 정의한 이 방법론은 큰 파급력을 낳았고, 동아시아는 오랫동안 정치적 질서 달성을 유가의 사상체계로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유교는 다르다. 형식적 예의 준수, 체제 순응적 윤리 의식, 집단에 대한 의무와 복종 요구 등 상사나 선임 등 권력자의 이익을 우선하기 위한 명분에 더 가깝다. 뚜렷한 목표달성을 위한 진지한 고뇌, 탐구 등 초기 유가가 지녔던 현실정치적 면모는 없어지고, 조선 중후기 급변하는 국제질서 속에서도 현상유지를 위한 명분론으로 한심하게 기능한 모습이 우리의 마지막 기억이다.

나는 이 문제를 조금 추상화해서 생각했다. 유교처럼 사회에 채택되어 명예를 누리다 점차 편집력을 상실한 사상은 이외에도 많다. 스콜라주의, 중상주의, 제국주의가 그랬고, 현대의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또한 이상과 괴리된 현실에서 그 효력을 잃었다. 심지어 민주주의조차 인터넷 매체가 등장하고 확증편향이 심화되며 형식적 명분만 남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며 심판대에 서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유교는 명분론으로 경직된 수많은 사상 중 하나일 뿐이다. 사상이나 이념은 근본적으로 명분론이기 이전에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론이고, 현재의 최선책이라고 해서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실리적으로 변형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일상 속 유교적 잔재는 이미 하나의 사회문화 현상으로서 뿌리깊게 자리잡았음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경우 사실은 과감히 내쳐질 수 있다.

범주화의 부작용

우리는 세상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고, 직관의 힘을 빌려 비슷한 것은 하나의 군으로 묶어 이해한다. 범주화다. 범주화 자체는 유용한 도구지만 문제는 개별 존재의 특성과 잠재력을 어느정도 무시하며 형성된 범주에 대해 호불호를 가질 때다. 범주는 정확하지 않고, 그 단편적인 인상은 오해를 낳는다. 이 사고방식에 대한 자정적 통찰이 부족할 때 인종, 민족, 계층, 성별을 기준으로 하는 급진적 분리주의와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 관점에서 유교의 예(禮)는 우생학과 개념적으로 공통분모가 있고, 같은 이유로 현대에서 한계를 겪는다. 단지 흑인에 대한 억압과 배제 대신 어린 백성에 대한 교화가 자리잡고 있을 뿐, 철저한 범주화와 범주에 대한 우열 나누기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다. 유교가 주장하는 바와 달리 전근대 군주의 단령을 벗긴다면 더 이상 군주가 아닌 길거리 노비와 같은 한 명의 인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범주화의 유용성은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범주의 한계를 인식하고 오해의 소지를 일으키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불가피하게 범주를 사용할 때는 범주 사이의 우열을 가리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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