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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8개월간의 사회복무요원 근무후기

1년 8개월간의 사회복무요원 근무후기

무엇을 적어야 할까

훈련소 한 달을 제외하고 1년 8개월간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아카이브 성향이 강한 제 블로그 특성상 그간의 모든 것을 솔직하고 가감없이 기록하고 싶지만 병무청과 기관에 문의한 결과 양쪽 모두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병무청 직원분과의 면담을 통해 제가 전달받은 입장은, 병무청은 형식적으로라도 사회복무요원을 ‘시키는 일만 해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 정도로 설계해놓았다는 겁니다. 자의적인 업무 개선이나 업무 경험 기록은 기본적으로 지시되지 않은 사항이므로 그분 개인적으로는 기특하고 바람직하다고 생각되는 것과는 별개로 병무청 차원에서 보호해줄 수는 없겠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기관과 업무를 특정할 수 없는 선에서 다듬어서 올립니다.

기본적으로 제가 겪은 경험이 흔한 사회복무 경험은 아닙니다. 비유하자면 이직하기 전 회사에서 겪었던 경험과 내부 사정을 여과 없이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입니다. 그런 행동이 도덕적이지 않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 앞으로도 자세하게 다룰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상은 별개입니다. 솔직하게, 많이 당황했습니다. 사회복무제도의 특수성도 제가 배치된 기관의 환경도 좀 특이했습니다. 저를 압박하는 순간이 많았고, 집에 돌아가서는 내가 놓인 이 상황을 어떻게 바람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고민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왜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지의 부당한 감정도 들었지만 현실적인 대안을 먼저 찾았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20개월간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기 싫었습니다. 과거를 되돌아볼 때 후회없는 생활을 했냐 물으면 그건 아니지만, 허송세월은 아니었습니다. 먼저 블로그를 쉬지 않고 꾸준히 관리했고, 사무실에서는 깃과 VS Code, 비주얼 스튜디오, 옵시디언, 파이썬 등의 개발 관련 도구를 설치해 자잘한 프로그램을 기획, 개발했습니다. 출퇴근길과 점심시간, 휴일, 추석 연휴 등 짬 시간을 활용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나 ‘시지프 신화’, ‘노자’, ‘명상록’ 외 비슷한 부류의 책 몇 권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 생산적인 기조를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동안에도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성심껏, 그리고 성의껏

qr-code-and-program-structure-light qr-code-and-program-structure-dark 이런 것들을 계속 만들었다. QR 코드, 매크로 프로그램 등

공직에는 공직 특유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업무분장에 열의를 다하려는 느낌이 부족하고 업무개선에도 관심이 많지 않습니다. 제 3자의 눈으로 보기로는, 사회적 편견만큼이나 ‘해왔던 대로’ 안전하게 하려고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대학교와 동아리에서 겪었던 경험, 그리고 많은 강연에서 들어왔던, ‘이 일을 왜 하는지, 왜 이렇게 하는지 의심해라’, ‘당신이 하게 되는 일에는 분명 어떤 문제가 있으므로 찾아서 직접 개선해라’ 등등의 생산적인 메시지와는 적나라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다른 환경이었습니다.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공무직에서는 혁신이 일어나기 어렵다”라는 정평은 유명하지만 이 정도일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도 분위기에 휩쓸리는 것은 좋아보이지 않았고, 업무개선에 초점을 맞추어 제 업무를 단축한 뒤 직원분들을 도와드렸습니다. 비효율을 개선하려는 것이 사무실에서는 튀는 행동이기도 했지만 여전히 시도할만한 것이었고, 또 좋은 결과를 낼 때의 소소한 보람이 있었습니다.

QR코드 만들고 관리하기

스마트폰에서 어플 파일을 자주 옮겨야 하는 상황이 있었습니다. 사무실 직원분들께서는 해당 파일을 저장해둔 몇 대의 스마트폰을 저장소로 사용하고, 그때그때 전원을 켜서 내 파일 > 다운로드 폴더로 이동 > 공유 > 퀵쉐어 > 파일 전송 의 방법으로 해결하고 계셨습니다. 불편했습니다. 저도 직접 몇 번 따라할 일이 있었는데, 스마트폰이 부팅된 직후의 버벅임도 버벅임이지만 대개 배터리가 방전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충전기를 찾아 연결하고 몇 분 기다려야 하는 사소하지만 반복되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공무직 특성상 사소한 비효율을 개선하는 일이 누구의 업무분장에도 포함되지 않는 구조적 공백이 있었고, 그 공백을 QR코드로 메워보기로 했습니다. 저는 빈 구글 계정을 만들어 드롭박스를 연결하고 파일을 업로드했습니다. 여기서 https://www.dropbox.com/s/identifier/filename?dl=0 URL 끝의 파라미터 01로 변경해 URL에 접속하는 즉시 다운로드가 시작되도록 했고, 해당 URL을 크롬 브라우저 > 전송, 저장, 공유 > QR 코드 만들기를 통해 QR코드로 제작, 피그마로 디자인한 뒤 종이를 인쇄, 코팅해서 드렸습니다.

정리해서 각자의 카메라 어플을 켜기만 하면 파일을 받을 수 있는 좀 더 직관적인 구조를 만든 겁니다. 유출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는 가벼운 것이었고, 실무적으로 모두가 불편함을 느껴왔던 것이기 때문에 반응이 괜찮았습니다. 나중에도 직원분들께서 새 어플리케이션 파일이 있으면 QR코드를 만들어줄 수 있겠냐는 부탁을 여러 번 주셨고, QR 코드 크기를 키우거나 보다 친숙할 한글 파일로 템플릿을 만드는 등 여러가지를 시도해보며 종종 만들어 드렸습니다.

웹과 엑셀 매크로 만들기

제가 있던 곳에서는 웹에 접속하고, 파일을 받고, 엑셀에서 정리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3만 개 가까운 행 데이터를 반나절 가까이 수정해야 하는 업무도 있었습니다. 저는 사무실에 처음 왔을 때 파이썬을 조금은 다룰 줄 아는 상태였기 때문에,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사전조사를 시작하고 코드를 작성했습니다. 매일매일 반복해야 하는 작업은 selenium으로 매크로를 만들었고, 엑셀 작업의 경우에도 먼저 개발 명세서를 작성하고 다른 직원이나 사회복무요원의 요구에 따라 openpyxlpandas, 혹은 xlwings 등으로 행렬 데이터를 정제해 파일을 저장하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컴퓨터와 거리가 먼 다른 사회복무요원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변수값을 config.yaml 외부 파일에서 변경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가능한 한 .py 파이썬 형식의 파일이 아닌 .bat이나 .exe의 친숙한 형태로 동작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 혹시 모를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아는 사회복무요원을 위한 README.md는 물론, 오랫동안 남겨질 수 있도록 옵시디언과 마크다운으로 사용 설명서를 작성, PDF로 변환하여 하나의 패키지처럼 꾸며 전달했습니다.

다만 이 부분은 호응이 부족했습니다. 직원도 사회복무요원도 프로그램 그 자체나 업무 효율화에 큰 관심이 없었을 뿐더러, 프로그램도 충분히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예외처리가 부족해 어떤 상황에서는 프로그램을 끄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거나 강제종료되는 경우가 있었고, 이 경험이 생각보다 나쁜 첫인상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config.yaml로 값을 설정하는 것 역시 의도와 다르게 대부분의 분들께 여전히 생소했던 것 같습니다. 프로그램의 쓸모와 완성도의 최소기준을 생각해본 계기였습니다.

엑셀 그 자체를 다루기

○○아, 엑셀 시트 하나 만들어서 여기 자료 다 정리좀 해줘.

특히 엑셀 작업은 첫 출근일의 첫 업무였습니다. 다만 첫 날에는 엑셀을 하나도 몰라 “시트가 뭘 말하는 거지?”라고 속으로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 날은 ChatGPT의 도움으로 어찌저찌 해결했지만 그 뒤에도 비슷한 결의 작업을 부탁하셨고, 엑셀이 차차 손에 익기 시작했습니다. 상투적인 표현이 아니라 IFERROR, COUNTIF, SUMIF, VLOOKUP, INDIRECT 등의 함수, 피벗 테이블, 조건부 서식이나 셀 서식, 틀 고정, 인쇄 미리보기 등 기본기를 많이 다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예를 들어 엑셀을 컴퓨터활용능력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배우기 시작했다면 이 정도로 흥미를 가지지 못했을 겁니다.

이 때 프로그래밍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엑셀의 IF 함수는 삼항 연산자와 다를 게 없고, vba는 대놓고 프로그래밍 언어입니다. 단순히 도구가 익숙했다는 점을 떠나 문제 해결 방식에서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저는 수작업으로 넘어가는 건 마지막 선택지로 미루고 최대한 엑셀이 제공하는 기능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조용히 작은 성공을 쌓아갔고, 반 년 정도 지나고서부터는 직원을 포함한 다른 분들께서 제게 엑셀을 여쭤보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벤트성 보조 작업들

이외에 상황에 따른 비정기적인 업무 관련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중에 기억에 남는 일들이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있습니다.

  1. 24년 말, 하드 디스크에서 자료를 빼던 도중 USB-B 포트에 느슨하게 연결된 젠더를 툭 건드렸다가 파일이 날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중요한 자료는 아니었으나 제 실수로 손해가 일어났다는 생각에 TestDisk 등 파티션 복구 방법을 찾아 파일을 건져낸 적이 있습니다. 다만 직원분께 말씀드리니 “그게 지금은 필요 없어졌기는 한데 참고는 해볼게 고맙다”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중요한 기여로 남지는 못했지만 유익했던 기억입니다.

  2. “컴퓨터 쪽 전공이지? 여기 컴퓨터 뭐가 잘 안 되는데 좀 봐줄래?”라는 말을 실제로, 그것도 꽤 많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은 램 교합부 먼지를 털고 다시 꽂으면 해결되는 경우였고, 드물게는 내부 청소를 하거나 아예 본체를 남는 재고로 교체해야 하는 문제였습니다. 컴퓨터 하드웨어는 한 번도 다뤄본 적 없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동료 사회복무요원의 도움으로 하나 둘 배워갔고, 이때의 경험으로 지금은 분해조립에 꽤 익숙해졌습니다.

  3. 한 번은 어떤 직원분께서 PDF 파일 용량 압축좀 해달라는 부탁을 주신 적이 있었습니다. 업무상 자료를 인터넷에 업로드할 수는 없어서 외부 프로그램을 받아 로컬 환경에서 해결해드렸더니 “고마운데, 우리 공사라 외부 프로그램 함부로 쓰면 안돼”라고 오히려 경고를 주셨습니다. 라이센스 등을 찾아보니 상업적으로도 무료라는 점을 고지하고 있어 큰 문제는 없어 보였지만, “그럼 직접 만들어서 쓰면 문제가 없겠네”라는 생각으로 동일 작업을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파이썬으로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이외에도 대량의 heif 파일을 로컬 환경에서 jpg로 변환해야 하는 상황을 바이브 코딩으로 즉석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어 해결한 일, 인물 뽑기 프로그램을 엑셀 RAND() 함수를 이용해 함수 구조가 모두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드렸던 일 등이 있었고 기억에 남습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reading-clips 책읽기는 마음을 다잡고 원리원칙을 확인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러나 공무직 특유의 분위기가 문제가 됐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업무에 노력을 기울이면 좋아는 하시지만 그게 끝이었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의 적극적인 호응을 가정했던 초기의 의도와 달리 “너가 잘 아는 것 같으니 앞으로도 너가 해라”라는 식으로 상황이 변질되는 경우가 있어선 당혹스러웠습니다. 예를 들어 호의로 시작한 QR코드의 경우, 직원분이 발령됨에 따라 “어플은 QR코드로 찍으면 다운로드가 되는데 여기에 없는 버전은 저 사람한테 말하면 만들어줄거다”로 제 정식 업무인 것처럼 인수인계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일례일 뿐이고, 혼란스러웠던 경험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

상호간의 위계인식

A: B씨는 지금 맡은 일이 뭐에요?
B: ○○ 하잖아요.
A: 그거 말고 없어요?
B: 아 지금 막내 업무랑 △△도 같이 하고있네요.
A: 아니 그건 □□가 아니잖아요 그거 말고 다른거 없어요?
B: 그것도 제외하면 없죠.
A: 그러면 바쁜 것도 아닌데 놀면서 왜 □□ 안 해요?
B: ??

제가 있던 곳은 기수 문화가 있었고, 사회복무요원 사이에서 위와 같은 대화까지도 당연하듯이 오갔습니다. 자기들끼리 통용하는 것은 상관하지 않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저나 다른 사회복무요원에게도 “너가 막내니까 궂은 일은 다 네가 혼자 다 하렴”라는 식으로 나오는 것은 문제였습니다. 특히 없는 개념을 만들어 쓰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으스대는 모습은 보기 낯부끄러웠습니다. 제 훈련소 동기나 다리 건너 지인 중에서도 이런 문화가 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고, 일개 사회복무요원들 사이에서 “나는 너보다 먼저 들어왔으므로 낫고 너는 나보다 늦게 들어왔으므로 못났다”라고 위계를 나누려는 것은 한심합니다.

Q. 단체 생활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이를 해결한 경험이 있나요?

많은 회사의 자기소개서 양식, 면접 질문중에 위와 같은 사항이 빈번히 등장합니다. 그리고 몸소 겪어보며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갈등은 당사자들에게는 큰 압박과 스트레스가 되는 만큼 지혜롭게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대부분은 상사에게 조용히 말씀드리거나 논리적인 합의점을 만드는 것, 새 규칙을 만들어 서로 지키기로 합의하는 것 정도를 모범적으로 꼽지만 제 경우 이런 정공법을 사용하기 어려웠습니다. 규정 내의 복종이 의무화된 갑을관계도 문제였고, 직원과 사회복무요원 등 이해관계자들의 인식 자체가 저와 상이하다는 조건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제 경우에는, 안타깝지만 불이익을 감수하는 형태였습니다.

설득을 가장한 통보

너가 사회생활을 안 해봐서 그런 것 같은데, 사실 나는 그게 맞다 보거든? 저기 ○○ 직원이 왜 잡다한 업무를 다 맡아 하고 있겠어. 그리고 ○○ 직원이 하는게 제일 없잖아? 왜 그러고 있겠어. 군대놀이 군대놀이 하는데, 사실 고참들이 알고 있는 것도 많고, 뭘 시키면 신속하게 잘 해줘. 그러니까 지금 구조는 사실 이유가 있는 거야. 쟤네가 너네한테 일 시키는 걸 우리가 봐주고 있는 것도 그래서고.

너는 다 평등한 사회를 원하는 거고, 나랑 쟤네는 사실 이게 맞다 보는 거고. 너 말도 일리는 있고 정답은 없어. 근데 일단 나랑 쟤네는 저게 맞다고 생각해 왔잖아. 쟤네도 막내일 때 고생 다 했고 이제 좀 편해지겠구나 하고 기대하고 있을 텐데 너 생각을 강요하면 쟤넨 그게 불만일 거고 문제가 터질 거야.

사무실에서 아무도 말은 안하지만 ○○ 사회복무요원보다 너가 그래도 생각도 있고 앞가림을 잘 한다고 생각해. 모두가. 그래서 나도 이런 말을 너한테 하는 거야.

새 사복이 들어오면 걔도 너한테 붙을 것 같아서 그래. 어떻게 보면 ○○파가 만들어지는 거지. 우리는 그게 걱정이야.

기억에 따라 옮겨적은 것이므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겠지만 취지는 위와 같았습니다. 어떤 직원께서는 그런 부조리를 옹호하거나, 적어도 방조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짧은 소감만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저는 듣기 거북한 것을 넘어서 좀 민망했습니다. ‘젊어서는 고생이고 늙어서는 신선놀음’. 공무직 사회에서는 이 문화가 정석적이라는 수준을 넘어 아예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거기까지는 직종과 사내 문화의 영역이고, 그런 생각이 자리잡게 된 맥락이 있을 것이므로 어찌저찌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 불문율을 외부인인 사회복무요원에게까지 적용하려 드는 것은 문제입니다. 더구나 제가 들었던 말은 설득의 화법을 빌려온 것이지만 내용은 통보였고, 듣기 나쁜 궤변이었습니다. 직관적으로도 저 의견은 성숙하지 않습니다. 머리를 식히고 좀 더 진중히 생각해보더라도 전혀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권위에 대한 생각

사무실에서 권위가 작동하는 방식이 언짢다 하더라도 권위의 필요성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여기서 한 번 정리해두고 싶습니다. 제가 이해하기로 탈권위가 설득력을 가지는 요지는 체계나 가치판단은 기본적으로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 언제 어디서나 의미는 사라지고 형식만 남은 비효율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것은 분명 발견되어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그리고 권위가 설득력을 가지는 요는 그 상상 속의 질서가 효율적인 대규모 협력을 가능케 하는 잠재력이 있다는 것 하나입니다.

이 관계는 “권위가 먼저, 그리고 탈권위가 그 다음. 권위를 덜어내는 것은 실리에 따라”라고 정리하면 깔끔합니다. 그리고 이 논리는 범용적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린터의 도착지 설정이나 연락망 순서도 직급을 기준으로 정렬해야만 하는 환경이 있다고 가정해본다면, 그건 의전과 정치를 위해서지 업무환경 개선이나 행복한 직장생활을 도모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런 권위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5년, 10년, 20년 오랫동안 어떤 조직에 몸담아오신 분들의 경험, 노하우는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충분한 성찰과 복기 없이 하루하루를 맞이하신 분들은 분명히 존재하며 그런 사람의 리더쉽은 위험합니다. 특히 제 경우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인 사회복무요원 사이에서 서로 선후임을 나누고 이익을 구조적으로 차등 분배하려는 악폐습이 있었고, 그 악폐습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해관계에 의해 유지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첫 번째 원리는 분명 이름뿐인 권위였습니다.

제가 기준으로 삼았던 대안은 이렇습니다. 원칙은 큰 일에나 어울리고 작은 일에는 연민으로 충분Il faut mettre ses principes dans les grandes choses, aux petites la miséricorde suffit하다. 이 원칙을 모든 상황에 엄격히 적용해야만 한다는 말은 아니지만, 사회복무요원뿐만이 아니라 직원분들 중에서도 어떤 분들께서는 직급과 사내정치에 과하게 얽매인다는 인상은 분명 있었습니다. 그 문제는 힘을 조금만 뺐더라도 훨씬 좋은 모습으로 보였을 겁니다.

번외: 소집해제 당일에

소집해제일이 다가오면서 복잡미묘한 감정이 고조되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건 예상치 못한 것이자 거의 처음 겪어보는 기분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는 그동안의 생각을 좀 더 속시원히 토로할 수 있을 줄 알았던 기대와 달리 복받쳐오르는 감정을 겨우 붙들고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무실 문을 나서면서 긴장이 완전히 풀리는 일이 생겼고, 마음이 충분히 다잡힐 때까지 주위에서 산책으로 휴식을 가져야 했습니다.

집으로 향하는 열차에서 지금 드는 기분을 천천히 메모했고, 정리해서 다음과 같이 옮겨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답답했던 것들을 어떻게든 개선해보고자 했던 예전의 열의가 끝내 유의미한 성과 없이 끝났다는 데서 오는 허탈함, 복무규정에 의한 구조적 외압과 특유의 사무실 분위기로 인한 부담감, 그리고 그러한 것들을 떨쳐내었다는 해방감과 이완, 드디어 본래의 나로 회귀한다는 감동과 기대감, 인생의 한 단락이 마무리되었다는 운명감, 나를 정의하던 키워드가 하나 사라졌다는 시원섭섭함, 그 키워드가 정말로 사라지는구나 하는 의외의 서운함, 옛날 훈련소의 기억. 그리고 다른 자잘한 감정까지 섞여있던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더, 사무실 문을 마지막으로 나오면서 이제 점심식사가 재미없어지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제가 제일 정직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밥 먹을 때의 분위기였습니다. 점심시간은 저와 동료 사회복무요원에게 잠깐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이자 고민을 털거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소집해제를 맞이함으로써 앞으로 점심식사 메뉴와 커피 메뉴를 고민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여기서 끝난다는 게 안타깝다고 느껴졌습니다. 앞으로 학교나 다른 직장에서도 유사한 상황은 많겠지만 느낌은 분명 다를 겁니다.

사실 별 거 아닌 사회복무제도를 통해 이런 소회를 느끼는 것은 결론적으로 인생에 대한 애착감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카이브

background-images 여기서 처음 써본 듀얼 모니터 환경. 나는 왼쪽에 무료 이미지, 오른쪽에 내 그림을 배경화면으로 두고 각각 공과 사로 분리해 사용하기로 했다

obsidian-notes-light obsidian-notes-dark 처음 인수인계 받을 때, 매크로 프로그램 기획을 할 때와 같은 상황에서 옵시디언을 개인적으로 계속 애용했다

본문에 반영되지 않은 것
  • 말라 비틀어진 거미 시체와 고인 커피 국물이 묻어나던, 불어터지기 직전의 일반쓰레기 봉지
  • 다 먹은 컵라면, 배달도시락 용기, 다 비워지지도 않았는데 주인을 잃어버린 접대용 병 음료수
  • 먼지 가득한 책상, 10분마다 울리는 전화 벨소리, 욕설과 폭언과 고함, 특유의 퀴퀴한 냄새
  • 내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열차시간을 조정해 달라는 수준의 무리한 요구를 하던 일반인들
  • 볼일 보고 안 씻은 손으로 악수를 청하던 5~60대 할아버지들
  • 각양각색 흡연자들이 풍기던 진한 담배 냄새
  • 그 외 기타 등등.txt (215GB)

마치며

alarm 1년 8개월간 사용했던 알람. ‘당분간 해야 하는’ 일은 끝났고, 이제 이 알람을 영원히 끌 수 있게 되었다

출퇴근 왕복 한 시간 사십분. 8개월차쯤에 이제 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를 생각해보면 이제라도 그만둘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지난 1년 8개월간의 경험은 불쾌한 시간이었지만 허송세월은 아니었고, 저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사회복무요원’이라는 단어의 이미지로부터 거리를 두려 했던 노력은 앞으로도 좀 특수한 경험으로 남을 겁니다. 이제 ‘당분간 해야 하는’ 일은 끝났고, 앞으로 해야 하는 일을 할 시간입니다.

이 기사는 저작권자의 CC BY 4.0 라이센스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