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 세상의 모든 전략과 전술을 읽고
책 소개
| 항목 | 내용 |
|---|---|
| 제목 | 손자병법 |
| 부제 | 세상의 모든 전략과 전술 |
| 저자 | 손무 원작, 임용한 엮고 씀 |
| 출판사 | 교보문고 |
| 초판 1쇄 발행일 | 2025년 1월 28일 |
병법서가 아닌 인문서적으로
책 제목은 손자병법이지만 단순한 번역서가 아니라 역사학자 임용한이 손자의 짧은 명제에 긴 주석을 달아 엮어낸 책입니다. 그래서 손자병법이라는 브랜드에 대해 어느정도의 가정적인 신뢰를 갖고 있는 독자를 전제하여 쓴 책이라는 인상이 있습니다. 책이 다루는 내용은 대략적으로 넓고 얕지만, 그렇다고 깊이가 얕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니발, 나폴레옹, 리와 그랜트, 패튼, 진시황, 유자광, 세종과 세조, 수많은 역사 속 지휘관과 군주가 지나가고 로마와 고대 그리스, 예루살렘 왕국, 제정 프랑스, 나치 독일, 남북전쟁기의 미국, 많은 분열기와 통일기의 중국 왕조가 등장하는 등 그 넓이가 깊이를 압도하는 형태입니다. 설명이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양이 방대하기에 세계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면 금방 지칠 정도고, 모르는 부분에서는 일단 멈추고 천천히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문체는 건조하고, 요지를 다루는 태도도 중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책은 큰 장과 작은 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작은 장은 다시 원문 인용, 저자의 뜻풀이, 역사 속 실례, 맺음말의 흐름으로 진행됩니다. 이중 원문의 진의를 추적해가는 과정도 잘 작성되어 있지만 역사를 인용한 부분이 질과 양 모두에서 훌륭하며 책의 핵심을 이룹니다. “이 시대의 이 지역에서 일어난 전쟁의 교전세력은 어떠하며, 그들의 세력과 명분은 어떠했고, 어떤 지휘관에 의해 어떤 전술이 기획되었으며, 실제로는 어떻게 흘러갔고, 전쟁 결과와 의의는 어떠하다. 이 사례는 손자의 이 의도를 뒷받침한다”라는 식으로 적재적소에 매우 세세히 기술되어 있어 편자의 해석이 잘 전달됩니다.
인용이 풍부해 결론으로 도달하는 과정이 저마다 다양하고,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 자체가 재미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형(形) 장에서는 1972년 발견된 한나라 대 죽간본의 “守則有餘, 攻則不足(수비는 내게 남음이 있게 하는 것이고, 공격은 적에게 부족함이 있게 하는 것)”라는 원문을 소개하며, 이 문장이 해석의 난해함으로 인해 후대에 ‘守則不足, 攻則有餘(힘이 부족할 땐 수비하고, 힘이 충분할 땐 공격한다.)’로 변형되었음을 지적합니다. 최초로 주석이 붙은 조조의 손자병법에서도 후자와 같이 기술되지만 그 주해본을 의아하게 여긴 당태종 이세민과 휘하 병법가 이정(李靖)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또다른 해석을 만들어낸 일화를 소개하며, 사회에 널리 알려진 ‘守則不足, 攻則有餘’가 지닌 의미상 어색함을 설득하면서 본론을 시작합니다.
손자병법은 집단을 승리로 이끄는 세부적인 전략에 대해 다루면서도 환경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어떤 관념을 가져야 하는지를 일관된 자세로 강조합니다. 그래서 원저자와 편자 모두 개개인의 자력과 신화를 칭송하기보다는 환경을 현실적으로 점검하고, 불리하다면 유리하게 조정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라고 조언합니다. 예를 들어 편자는 손자병법이 시작되는 계(計) 장에서 숫자 의존증을 비판합니다. 반지성주의가 아니라, 숫자는 분명 무언가를 말해주지만 모든걸 말해주지는 않으므로 오판의 가능성을 남긴다면서 실상을 파악하는 정도가 아니라 실상을 끄집어내는 수준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비슷하게,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90%,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10%라 하더라도 결과를 하늘에 맡겨서는 안 된다며 1할의 독립변수로 현실을 조정하라고 충고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인문학의 의의
그중에서 편자의 시선은 원문을 인용하며 이로부터 실리 추구의 자세를 갖춰야 하는 이유와, 그러한 태도의 실현은 인간과 맥락에 대한 깊은 이해로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일관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이 이 책으로 하여금 병법서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인문학 저서라는 개성을 갖게 만듭니다. 임용한의 손자병법은 1편의 계(計)부터 13편 용간(用間)을 다루는 내내 손자의 의도를 중립적으로 추론해내면서도 그로부터 추상화된 관점을 일관되게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것이 두드러지는 것은 매 장마다 빈번히 등장하는 편자의 사회비판입니다. 이는 손자병법의 순수한 원문으로부터 깊은 뜻을 직접 느껴보고자 한다면 방해가 되지만, 대부분 원론적으로 필요한 내용일 뿐더러 이 책의 성격을 생각할 때 시의적절한 수준이기 때문에 괜찮게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엮은이가 손자병법을 매개로 전달하고자 하는 생각 중 개인적으로 인상깊게 읽은 부분 몇 가지를 예시로 들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승리한 방법이 아니라, 그 방법이 승리로 이어진 요인을 알아내려면, 인간과 사회의 생리와 문화에 대한 통찰이 더해져야 한다. 요즘 기업에서 인문학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러나 기업의 인문학 교육은 지나치게 유행을 탄다. 경기가 좋으면 인문학 수요가 늘고 경기가 나쁘면 실무나 정신교육에 집중한다. 이런 것을 인문학 교육으로 이해하는 경우도 많다.
인문학은 여유 있을 때 시행하는 사치도 아니고 교양, 품성교육도 아니다. 위기감을 느낄 때 실무교육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변화의 시기에 낡은 기술의 정비 교육에 더 투자하는 것과 같다.
또는,
군대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를 보면 ‘보여주기’를 위한 전시용 훈련이 일반화되어 있다. 훈련에는 실험과 점검이 동반되어야 한다. 돌발 상황 대처 능력을 파악하고 문제점을 찾아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각본대로 정확하게 감동적으로 연기하는 것을 시험한다.
이런 비판에 항상 나오는 반론이 있다. “무형의 요소는 공정하게 채점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다. 그것은 공정을 가장한 위선이다. 전근대 과학과 현대 과학, 전근대 의학과 현대 의학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보이는 것을 대상으로 하느냐 보이지 않는 것을 대상으로 하느냐의 차이다.
그리고,
외교전에서 승리하려면 과거의 원한과 감정을 접고 현실과 미래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국제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다”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우리는 감정을 이겨내지 못해서 이 교훈을 실현하지 못한다. 우리 주변의 인접국이라야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 북한뿐인데 매사에 감정과 선입견이 앞선다. 이런 점을 지적하면 “그 말이 옳지만 우리는 특별한 역사가 있어서 그 교훈을 적용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 그런데 우리가 손자의 조언에 따라 현명하게 외교하려면 이런 선입견부터 가장 먼저 버려야 한다. 우리가 특별한 역사, 특별한 원한이라고 말하는 것들보다 훨씬 심한 경험을 한 나라도 세계에 허다하다.
특히 마지막 인용문에 대해 첨언을 남기자면, 편자는 모공(謀攻) 편에서 ‘외교의 제거’라는 원문 해석을 다룰 때 독일과 프랑스도 양차대전에서 서로 수많은 피해를 주고받았지만 지금은 과거를 접어두고 필요하다면 협력하는 관계로 변모했고, 실제로 그들은 상호간 이익을 얻고 있다며 이런 양상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합니다. 얼핏 편파적인 의견으로 들릴 수 있음에도 편자는 손자병법이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상 속에서 엄격한 실리와 효율의 추구를 위해 집필된 저서임을 강조하며 독자를 설득합니다. 빈번히 등장하는 저서의 논평은 이런 맥락 속에서 이 책의 매력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마치며
제 개인적으로는 겨우 이해한 부분도 많고 내용이 가벼운 편은 아니라 앞으로도 두세번 더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내용 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책값이 2만원 초반으로 준수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책과 친해질수록 점점 만족스러웠습니다. 단순히 양장으로 되어 있고 디자인이 깔끔해서가 아니라 몇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책 표지에 전서체로 쓰여진 ‘손자병법(孫子兵法)’은 빛의 각도에 따라 강렬한 경고성 와인색으로 빛나면서 손자병법의 무게감을 더합니다. 각 장은 구분감을 위해 분량이 의도적으로 맞춰져 있으며 모든 장의 마지막 분량은 왼쪽 면에서 끝나고, 오른쪽 면에서 새 장이 시작됩니다. 한 장을 넘겨보면 왼쪽 면이 통째로 적갈색 여백으로 채워져 있고, 다시 오른쪽 면에서 새 본론이 시작됩니다. 소장중인 책 중에서도 디테일이 인상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