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훈련소 보충역 3주과정 수료일지
기분이 얼떨떨합니다. 천천히 흐르던 시간이 다 갔고 저는 어느새 연무관을 나와서 집에 와있습니다.
저는 시기적으로 2024년 5월 21일 수류탄 폭발과 2024년 5월 23일 중대장의 가혹행위로 인한 훈련병 사망사고가 겹친 직후에 입영한 첫 기수였고, 게다가 보충역이었어서 그런지 훈련소에서 눈에 띄게 편의를 봐주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훈련이 쉬웠다라기보다는 같은 교육도 가능한 한 시원한 곳에서 진행하거나 군기훈련의 강도를 꽤 순화하는 식이었습니다.
보충역 자체의 현역대비 헐렁한 교육과정과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훈련소 생활에 따라 자대가 달라지는 현역과 달리 보충역은 수료 이후의 계획이 다 정해진 채로 입영을 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제 생활관에서는 장기대기로 전시근로역 편입을 앞두고 훈련소가 재밌다고 들어서 일부로 왔다는 특이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저는 훈련소에 공책과 필통을 가져갔고, 틈틈히 일기로 그날 하루하루를 기록했습니다. 총 14장 분량이 정리되었고, 수료 후 집에서 기록을 다시 블로그 글로 다듬어 옮겼습니다.
훈련소 사전준비
저는 준비물을 몇 가지 가져갔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채로 몸만 데리고 입소해도 고생은 더 할지언정 큰 지장은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가지고 간 몇몇가지는 정말 유용했습니다. 가지고 간 물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준비물 | 가져간 이유 | 실제로 유용했는지 |
---|---|---|
카시오 F-91W-1 손목시계 | 시간 확인용 | 어딜가나 유용함 진짜 좋음 👍 |
다이소 깔창 2쌍 | 군화에 넣어서 사용하기 위함 | 전투화에 넣어서 쓰면 진짜 좋음 👍 |
3M 이어플러그 2쌍 | 여분용 | 보급품 이어플러그랑 비교도 안 되게 좋음 👍 |
연습장과 필통 | 일기작성 및 그림그리기용 | 유용하긴 했는데, 결국 짐이긴 했음 🤔 |
샴푸, 바디워시 | 여분용 | 유용하긴 했는데, 올인원이 더 나을듯 🤔 |
책 2권 | 심심함 달래기 위함 | 불침번때 잠깐 읽는 정도 빼면 결국 짐이었음 👎 |
휴지 1롤 | 여분용 | 보급품 휴지도 다 못 쓰고 나옴 👎 |
칫솔곽 | 지인이 꼭 가져가라고 어필함 | 보급품으로도 칫솔곽이 나와서 쓸모가 없었음 👎 |
다른 사람은 보통 샴푸와 바디워시 정도를 제외하면 맨몸으로 온 경우가 더 많았지만, 카누나 포카리 스웨트 분말, 특히 전문연구요원의 경우에는 몇 가지 논문을 뽑아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져갔으면 좋았을법한 물건에는 수면안대가 있었습니다. 예민하다면 수면에 방해가 될 정도로 취침등이 꽤나 밝기 때문입니다.
훈련소 하루 일과 요약
일지를 쓰기 전에 매일매일 반복되는 공통분모를 먼저 정리했습니다. 먼저, 훈련소의 하루일과는 다음과 같이 진행됩니다.
gantt
title 평상시 일과
dateFormat HH:mm
axisFormat %H:%M
section 아침점호
취침: 00:00, 06:30
기상 및 세면세족: 06:30, 07:00
아침점호 및 아침식사: 07:00, 09:00
section 오전 일과
오전 교육 및 훈련: 09:00, 12:00
점심식사: 12:00, 13:00
section 오후 일과
오후 교육 및 훈련: 13:00, 17:30
저녁식사: 17:30, 18:30
샤워 및 개인정비: 18:30, 20:30
section 저녁점호
청소 및 점호대기: 20:30, 21:30
저녁점호: 21:30, 22:00
취침: 22:00, 2h
기본적인 하루 일과는 위와 같이 진행되지만, 훈련소 규정상 6월 훈련병부터는 더운 기수로 분류되어 혹서기 일과가 병행됩니다. 이 변종 일과는 아래와 같이 진행됩니다.
gantt
title 혹서기 일과
dateFormat HH:mm
axisFormat %H:%M
section 오침 전 일과
취침: 00:00, 03:00
기상 및 세면세족: 03:00, 03:30
교육 및 훈련: 03:30, 07:00
아침식사: 07:00, 08:00
교육 및 훈련: 08:00, 12:00
점심식사: 12:00, 13:00
개인정비: 13:00, 14:00
오침: 14:00, 16:00
교육: 16:00, 17:30
저녁식사: 17:30, 18:30
샤워 및 개인정비: 18:30, 19:30
section 저녁점호
청소 및 점호대기: 19:30, 20:30
저녁점호: 20:30, 21:00
취침: 21:00, 3h
혹서기 일과의 특징은 취침을 저녁 9시, 기상을 새벽 3시에 한다는 겁니다. 입소 1주차가 다 지나가기 전 시작되며 부담이 꽤 있지만 따라가야 합니다.
일과를 벗어나자면 훈련이 있는 평일중에 과자나 음료 등 부식이 나온다는 점을 특기할만한 것 같습니다. 별 것 아니지만 바깥 생각이 나지 않도록 하는 진정제 역할을 해줍니다.
아카이브
block-beta
columns 6
title["생활관"]:6
164 166 168 170 172 174
165 167 169 171 173 결번
sp1[" "]:6
160 162 sp2[" "]:4
161 163 sp3[" "]:4
- 24-24기 (6월 13일 입영 & 7월 4일 수료)
- 26연대 1교육대 1중대 3소대 11생활관 167번 훈련병
- 총기번호 000442
훈련소 일지
1주차
1일차
첫 입소일입니다. 입소식은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에서 짧게 진행되며, 애국가를 제창하고 잠깐 경례를 하고 나니 끝났습니다.
부모님이 떠나고 나면 조교들이 곧바로 악마로 돌변한다는 소문과는 다르게 차분한 분위기 속에 여러 행정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부모님들이 퇴장하시고 부모님이 앉아계셨던 자리 근처로 이동해 여러가지 검사와 설문조사를 거치는데, 지참한 나라사랑카드와 신분증으로 입영대상자가 맞는지 확인을 받거나 우울증이나 자살 등 정신건강 관련 설문지를 4~5장 작성하는 식이었습니다.
작성이 끝나자 500mL 얼음물과 훈련소 교번 표를 지급받은 뒤 지참한 캐리어를 끌고 지정된 연대로 이동했습니다. 연대까지의 거리는 직선거리로는 얼마 되지 않으나 입소대대와 연무관을 거쳐 빙 돌아가기 때문에 꽤 멀리 걸어가게 되었는데, 처음 보는 낯선 환경과 어색한 침묵 속에 캐리어 끄는 소리만 드르륵 드르륵 들리는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되었습니다.
배정받은 연대 및 교육대에 도착하면 컴프레셔로 흙먼지를 털고 본인의 생활관으로 입소했습니다. 생활관에 도착하면 곧바로 침대에 외피를 씌우는데, 재질이 매우 거칠고 빡빡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외피를 씌우다 다들 중지와 약지의 두 번째 마디가 쓸려 까지게 됩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본인 중대의 강의장으로 이동해 앞으로 3주간 사용할 생활복 상의 및 하의를 사이즈별로 각각 2벌씩 받게 되며, 해당 생활복으로 즉시 환복 후 가져온 캐리어를 모든 생활관마다 있는 결번 자리에 테트리스 쌓듯이 차곡차곡 정리했습니다.
첫 날은 별다른 훈련 및 교육이 없는 대신 입영심사대에서 받았던 것과 정말 비슷한 논조의 정신건강 관련 설문지를 여러 장 작성하게 되며, 침대 밑에 숨겨진 바구니와 바구니에 담긴 치약, 칫솔, 비누, 수건 등 생활에 필요한 기초 보급품을 확인한 뒤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식사가 끝나면 외부 목욕탕에서 샤워를 진행하고, 정말 낯선 기분 속에 하루가 끝납니다.
간만에 정말 멍하고 어색한 하루였습니다. 서로 서먹서먹한 사람들 사이에서 침묵이 이어지고 집에서 가져온 물품, 저의 경우 책과 연습장, 필통 등이 있었는데 꺼내도 되는지를 몰라서 괜히 손목시계로 의미없는 시간만 계속 확인하다 잠에 들었습니다.
2일차
훈련소에서의 첫 기상일이자 제식훈련 교육이 있는 날입니다.
그 유명한 기상나팔을 들으며 6시 반에 기상하여 첫 아침점호가 진행되었습니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간단히 세면세족을 진행하고 신병교육 가이드북을 챙긴 뒤 작은 생활관별로 교육대 옆 도로에서 3열을 맞춘 뒤 인원에 이상이 없으면 연병장으로 이동해 중대 인원수 및 건강상태를 점검하고 아침점호를 시작합니다.
아침점호는, 소대장과 중대장의 목소리가 정말 크고 힘찼던 것이 생각납니다. 우렁찬 목소리로 분대장, 소대장, 중대장, 교육대장 순으로 신속히 전달되는게, 제가 진짜 군대에 와 있다는 것이 제대로 실감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침점호 일과가 끝나고는 아침식사 후 생활관에서 기본 제식훈련을 받았습니다. 원래라면 연병장 등 외부환경에서 교육이 진행되지만, 제 경우 6월 기수부터는 더운 기수로 분류된다며 생활관 내에서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분대장을 통해 차렷, 열중쉬어, 쉬어, 편히쉬어, 좌향좌, 우향후, 뒤로돌아 등 기본 동작을 교육받으며 생활관별로 4명 정도를 단위로 평가를 받게 됩니다. 평가는 크게 깐깐하지는 않았고, 동작을 잘 인지하고 있다고 판단되면 합격을 주는 정도입니다.
또, 분대장과 부분대장을 뽑았습니다. 부분대장은 존재감도 없는 형식상의 역할이지만 분대장은 나중에 고생을 하게 되기 때문에 눈치싸움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제 생활관에는 분대장 훈련병으로 뽑히면 먹을거리나 담배타임 등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자원한 사람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정해졌습니다.
점심 이후에는 다른 교육대 건물 무기고에서 본인 교번에 해당하는 총기를 받았습니다. 그 유명한 K2 소총을 실물로 처음 보게 되는 순간입니다. 실총은 무겁다고 들었는데 딱 제 기대만큼 무거웠고, 핸드가드와 개머리판쪽에 스크래치와 찍힘 자국이 굉장히 많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이때 받은 실총은 수료 전날까지 훈련때는 들고 다니고, 훈련이 아닐 때에는 생활관 총기보관함에 보관합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같은 생활관 동기 중 한 명이 가정사로 청원휴가를 이틀 받아 나갔습니다. 이 분은 아이가 있는 가장이시기도 했는데, 아마 아이 관련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 날 부식으로는 ABC 쿠앤크 초콜릿 과자, 피자칩, 스타벅스 캔커피가 나왔습니다.
3일차
부대제식과 총기제식을 교육받는 날입니다.
처음으로 불침번을 선 날이었습니다. 불침번은 기상하면 먼저 깨어있던 사람으로부터 금일 암구호(이 날의 암구호는 ‘나일론 에센스’였습니다)와 특이사항 등을 인수인계받은 뒤 지정된 시간에 기상하여 한 시간동안 말 그대로 멍을 때리며 ‘불침’하게 됩니다.
시간을 보내다 30분이 되면 본인이 맡은 생활관 구역 온습도를 체크한 뒤 당직책상 앞 온습도를 기록하는 훈련병에게 찾아가 보고하고, 45분이 되면 다음 사람을 깨우러 가고, 다음 사람이 나오면 교대한 뒤 이어 취침합니다. 다만 저는 제 생활관에 코골이가 정말 심한 분이 있어서 이 날 남은 시간은 거의 뜬눈으로 보냈습니다.
토요일은 원칙적으로는 훈련이 없는 날이지만 첫 주 토요일만 예외적으로 훈련이 진행됩니다. 아침점호에 뜀걸음이 추가되었으나 이 날은 차후 예정된 1.5km 뜀걸음 체력측정 코스를 걸어서 갔다 오는것으로 간소히 진행되었습니다.
아침점호 후 이 날은 크게 점심식사를 기준으로 식전에 부대제식, 식후에 총기제식을 배우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부대제식은 연무관으로 이동해 양팔간격, 개인간격, 좁은간격 좌우로 나란히 또는 2열 종대로 헤쳐모여 등 기본 부대제식을 배우고 생활관 단위로 연습을 거쳐 분대장에게 검사를 받아 합격을 받으면 생활관으로 복귀하는 식으로, 총기제식은 다시 연무관으로 이동해 앞에 총, 세워 총, 받들어 총 등 기본 총기제식을 배운 뒤 바로 총기수여식을 거치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총기수여식은 훈련병 전 인원이 오와 열을 맞추어 선 상태로 중대장을 향해 받들어 총을 몇 번 하다 보니 금방 끝났습니다.
이 날은 서서히 본인이 어디서 뭐하다 왔는지를 서로 자세히 소개하기 시작해서 생활관 분위기가 녹기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고, 또 동시에 훈련병과 현역 분대장 사이에서 소통이 되기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이 날에 전투복(흔히 말하는 훈투복)과 전투화를 지급받았습니다.
이 날 부식은 캔콜라가 나왔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29살 161번 훈련병이 취침시간에 “오늘도 수고했습니다”와 같은 하루 마무리 멘트를 하러 당직책상으로 불려갔고, 이 날부터 라디오병이라고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 웃겼던 멘트들: “아 더 힘들게 하면 콜라 다 훔쳐버릴거야”, “콜라 2개 주시면 문제 푼거 보여드릴게요”, “군대가면 변비걸린댔는데 나는 똥이 줄줄나오네”
- 개인 정비 시간에 할 게 없다며 책상에서 물병 뚜껑으로 당구나 알까기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4일차
훈련병 신분으로 맞는 실질적 첫 번째 휴일입니다. 휴일이지만 일과가 아예 없지는 않은데, 침대 매트리스를 들춰내 햇별에 말리고, 이 날 분대장들이 직접 스팀소독했다는 수통을 지급받습니다.
이 날은 처음으로 휴대폰을 2시 반부터 3시 반까지 1시간 제한이 해제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이 날은 입소 시기가 시기인 만큼 당직책상에서 “분위기가 분위기인 만큼 부모님께 안부전화 꼭 드립시다”라는 안내방송이 함께 나왔습니다. 저는 30분 전화 드리고 남은 시간동안 밀린 웹툰을 보며 시간을 보냈고, 다른 분들은 보통 유튜브, 인스타를 보면서 시간을 떼웠지만 특이하게 자식이 있는 분들께서는 서로 자식사진을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휴대폰 사용시간이 지나고는 신병교육 가이드북의 빈칸채우기 문제풀이 시간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문제가 어렵진 않으나 분량이 꽤 되고 책 이곳저곳을 뒤져봐야 하기 때문에, 제 생활관에서는 각자 파트를 나눠서 채우되 전문연구요원이 더 많은 할당량을 가져가는 식으로 분량을 분배했고, 다 채워지면 서로 책을 돌려보기로 했습니다.
분대장들은 빨리 채우면 TV를 보여준다는 식으로 구슬리지만, 주어진 분량이 많고 옮겨적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실제로는 에스파 영상만 살짝 보고 끝났습니다.
이틀 전 청원휴가를 받아 나갔던 훈련병이 이 날 복귀했습니다. 진짜 별건 아닌데 다들 반가워하고 환영했습니다.
이 날도 부식이 나오기는 했는데, 구체적인 메모로 남기지는 않았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기본교재 검사때 제 글씨가 좋다며 다른 훈련병들이 분대장한테 보여줬고, “야 글씨 좋네~”라며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때부터 생활관에서 대필병으로 불렸습니다.
- 예방접종 받을 인원조사가 있었습니다. 제 생활관의 경우 약사 박사과정에 있는 전문연구요원의 예방접종을 받으면 여러가지로 좋다는 한 마디에 “귀찮은데 그럼 우리는 다 맞으러 가자~”라는 식이 되었습니다.
5일차
건강검진과 훈련 준비를 받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 아침점호 전, 전투화에 미리 가져간 다이소 깔창을 넣어봤더니 착화감이 비교도 안 되게 굉장히 푹신해져서 놀랐습니다. 특히 아침점호 뜀걸음은 물론, 차후 거리가 먼 교장까지의 이동이나 행군 등에서 발과 다리가 받는 부담을 크게 줄여줬습니다.
뜀걸음 후 생활관에서 리하이 믹스라는 가루형 수분보충제를 지급받았습니다. 호기심에 바로 타먹어봤더니 생활관 인원 전체의 솔직한 후기로 별로 맛이 없었습니다. 석류맛이라고는 하는데 그보다는 좀 애매한 맛이었고, 이때 한 번 타먹고 수료식까지 탈 일이 없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아침식사 후 소변검사와 결핵검사가 있었습니다. 과정은 간단하지만 사람수가 많아서 오전 대부분의 시간을 계속 대기하게 됩니다. 검사는 학교에서 하던 그대로, 교육대 건물 복도와 결핵검사 버스를 오가며 이루어집니다.
점심시간 후에는 교육대 밖 건물로 이동해 수막구균과 파상풍 예방접종을 받았고, 돌아와서는 저녁식사시간까지 신병 가이드북의 수류탄, 응급처치 파트 문제풀이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녁식사 후 생활관별로 상의와 육군모에 붙일 가죽 군번표(훈련소에서는 레자라고 불렀습니다)와 바느질 도구를 받았습니다. 가죽 군번표는 연대, 중대, 교번 등 소속정보가 적혀있었고, 제 경우 상의용 26-1-167
군번표, 육군모용 01-167
군번표를 받았습니다. 바느질은 사실 다들 잘 못해서, 교범대로라면 군번표 실루엣을 따라 여섯 군데에 x자로 바느질해야 하지만 다들 대충 일자로 고정하는 식으로 떼웁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날부터 첫 날의 긴장도 상당히 풀리고, 제식이나 경례가 자연스러워지는 등 훈련소 생활이 꽤 익숙해졌습니다.
이 날 부식은 빈츠와 몬스터 제로(화이트)였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점심식사 가다가 옛 분대장 훈련병이 분대장에게 걸려서 제식훈련 받고 갔습니다. “훈련병들, 제식이 장난이야? 놀러왔어? 이 훈련병 될 때까지 한다. 제자리걸어, 갓! 하나! 둘! 셋! 넷! …” 웃긴게, 제식훈련이 계속되니까 이 훈련병이 “저 박치입니다”라고 고백했는데 분대장이 “저 빡칩니다”로 잘못 들어서 더 힘들어질뻔 하기도 했습니다.
- 이 훈련소 동기가 저녁점호 후 분대장에게 집에 가고 싶다고 진지하게 토로했습니다. 분대장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밖에서 들은 것과 달리 아무런 혜택도 없고,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도 솔직히 화가 난다는 식이었습니다. 분대장은 이야기를 듣고, 지금은 내보내줄 수 없으니 우선 한숨 자고 생각해보라며 타일렀습니다.
6일차
대적관 교육을 받는 날이었습니다.
새벽 3시 불침번이 있었습니다. 코골이도 있고, 불침번이 끝나고 잠이 너무 안 들어서 거의 뜬눈으로 시간을 보냈는데 때문에 전날 받은 몬스터 제로를 마셔봤음에도 이 날은 하루종일 힘들었습니다. 이날 아침점호는, 아마 상벌점제에서 점수가 낮아서 따로 불러냈던 것 같은데, 뜀걸음 순서가 되었을 때 제 생활관만 열외해서 교육대 건물을 한바퀴 돌며 쓰레기 줍고 오는 형태로 특이하게 진행됐습니다.
아침식사 후에는 훈련복 차림으로 오전, 오후 모두 실내에서 TV로 대적관 교육을 들었습니다. 주로 “우리의 주적은 북한이다”와 같은 뉘앙스의 교육이 있었고, 교육 후 ‘대한민국이 왜 소중하고, 자신은 어떤 마음으로 조국을 지킬 것인지’를 주제로 에세이를 작성했습니다. 이후에는 신병교육 가이드북 문제풀이 시간이 또 있었습니다.
생활관에 분대장이 방문해 척추측만증이 있거나 전날 소변검사 결과에서 이상이 있는 경우 등 건강상에 이유가 있는 인원을 대상으로 집에 갈건지 의사를 확인하고 니코틴 패치 수요를 조사해 갔습니다. 이때 분대장이 몇 가지 썰을 풀고 갔는데, 훈련소 분위기와 관련된 이야기로 다음 정도의 내용이었습니다.
- “화생방 가스는 와사비를 석탄에 찍어먹는 느낌이다”
- “세열수류탄은 현재 사고때문에 현역도 못 던지고, 너네도 그래서 연습용 수류탄만 던지고 말거다. 나는 언덕에서 던져봤는데 구라안치고 땅이 둥- 하고 울려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 “행군은 5km 걷고 쉬고 또 5km 걷고 쉬는 식으로 진행된다. 내가 훈련병일 때 몸무게가 48kg인 동기는 자기 몸무게의 반 되는 군장을 메고 가는게 맞냐고 그랬었는데, 그 동기도 결국 완군 하더라. 나는 행군이 끝나고 3일동안은 뒤뚱거리면서 걸어다녔다”
- “너네 조금 전 기수만 해도 코로나 때문에 입소 후 1주를 격리만 했고, 옛날에는 아예 3주를 모두 줌으로 때웠던 시절도 있었다”
이 날 부식은 쿠크다스와 2% 캔이었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날 총기분해도를 받았고, 혹서기 일과가 있어 마찬가지로 9시에 취침했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전날 집 가고 싶다는 훈련소 동기는 한숨 자고 진정했습니다.
- 전날 제식 걸린것 때문에 제식 빡세게 맞췄더니 상점을 받았습니다.
- 개인정비 시간에 다른 훈련병 편지 대필을 해줬습니다.
7일차
체력측정과 총기분해 교육을 받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부터 혹서기 일과가 시작되었고, 새벽 3시에 기상했습니다. 이 날은 체력측정과 총기분해 교육이 있었는데, 혹서기 일과를 따라 활동복 차림으로 대기하다 간소화된 아침점호가 끝나면 체력측정은 후 1.5km 뜀걸음 기록즉정을 먼저 거치고, 체력측정이 끝나면 잠시 휴식 후 교육대 건물 뒤에서 윗몸일으키기와 팔굽혀펴기 측정을 거칩니다.
각각의 종목에는 합격기준이 있는데 세 가지중 하나라도 불합격할 경우 보충 훈련을 받아야 하며, 제 경우 윗몸일으키기는 59회, 팔굽혀펴기는 30회로 괜찮은데 뜀걸음에서 134등으로 미달이 났고 (단 뜀걸음 합격여부는 등수가 아닌 시간을 기준으로 합니다) 보충훈련을 받게 되었습니다.
혹서기 일과중에는 새벽 일과가 끝나면 딱 아침시간이 됩니다. 식사 후에는 총기분해 교육이 있었고, 취식장 앞에서 디귿자로 모여 총기의 가스조절기부터 노리쇠까지의 분해법을 교육받습니다. 이때 쉬는시간동안 교육을 진행한 소대장의 썰이 있었는데, 다음 정도의 내용이었습니다.
- K2는 다 좋은데 무게중심이 안 맞아서 체감 무게가 무겁다는 단점이 있다. 미군이 사용하는 M4의 경우 탄창삽입구를 기준으로 좌우 무게가 평형을 이루는데 K2는 방열판 쪽이 훨씬 무겁다. 이 점 때문에 간부들은 K2 개머리판 목부분을 한 손으로 잡아 지면과 수평이 되게 들어올린 채로 40초를 버티는게 얼차려였다.
- 다리가 전역사유가 되어 전역을 준비하고 있다. 이유는 남의 아픔이 자신의 업무가 되는게 싫어서다. 본인이 지금까지 한 사단급 규모의 훈련병들을 배출해봤는데, 그 많은 인원을 훈련시키면서 취침시간에 손가락 4개를 바늘로 모두 관통한 훈련병이나 아예 자살한 훈련병 등을 봐왔고 그 점이 마음에 안 든다.
- 총을 잡을 때에는 너네가 편한 대로 잡으면 된다. 조준 자세 가르칠 때 모두가 동일한 자세를 취하도록 교정하기도 하는데, 사실 교범에도 사수가 본인이 편한대로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고 나와있다.
점심 식사와 샤워를 마친 뒤,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오침 시간을 가졌습니다. 기상 후에는 강의실에서 개인화기 교육 영상을 시청했고, 생활관에서 잠시 대기 후 ‘A급’이라 불리는 새 군복을 보급받았습니다.
부식은 프링글스 사워 어니언맛과 포카리스웨트가 나왔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생활관 단위의 가위바위보에 져서 잡일을 했습니다. 다음날 다른중대의 사격훈련때 쓸 급식판과 식기를 개수 맞춰서 정렬, 랩으로 포장하는 일이었습니다.
2주차
8일차
이 날은 총기분해와 사격자세, 총기 안전검사에 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아침점호 후 공격군장 차림으로 인근 훈련장으로 이동해 총기분해와 기초 사격자세, 그리고 총기 안전검사를 교육받습니다. 총기분해는 생활관별로 전 인원이 일정시간 내에 가스조절기부터 노리쇠 공이까지의 분리, 그리고 다시 역순환의 조립까지 일정시간 내에 마치면 분대장에게 검사를 맡고 합격 판정을 받아야 통과되는 방식입니다. 기초 사격자세도 마찬가지로, 생활관 단위로 서서쏴, 앉아쏴, 엎드려쏴 세 가지 자세를 교육받고 연습한 뒤 분대장에게 합격을 받으면 통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날 불편함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공격군장 차림이 생각보다 꽤 조여서 숨쉬기가 조금 불편할 정도였다는 것, 또 제 경우 총기분해를 빠르게 하려다 총몸 상하부 분리과정에서 오른손 검지 두 마지를 찝혀서 혈관이 터지는 사고가 있었다는 것, 또 서서쏴 자세에서 K2 소총을 들고 있어야 하는데 총이 생각보다 많이 무거워서 검사 과정에서 버티기 힘들었다는 것 정도가 있었습니다.
생활관으로 돌아오고 나서는 되고 싶은 군인상, 취사장 및 음식 만족도, 배변활동 주기 이상 등 설문조사가 있었고, 저녁식사 이후에는 다음날 사격 때의 조, 사로 표가 나왔습니다. 분대장이 이건 절대 까먹지 말라고 강조해서 제 생활관 동기중 몇 명은 손에 펜으로 써두기도 했습니다. 저는 5조 3사로였습니다.
정확한 시간순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 날 사격때 사용할 이어플러그를 받았습니다. 단 얇고 딱딱하고 찢어져있어서 사용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날 부식은 딸기맛 웨하스가 나왔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전에 집에 가고 싶다던 훈련병이 소대장한테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니까 “바보야 갈꺼면 빨리 가야돼 사격만 하고 갈까? 하다가 수류탄도 던져보고 갈까? 하게 되고 그런 식으로 가다보면 벌써 2주차, 3주차 돼” 라는 식으로 타이르고 갔습니다.
- 옆 10생활관에서는 “다음에 분대장한테 뭐 또 지적받으면 내 손에 뒤진다”라는 식으로 일진놀이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 훈련소 입소 첫날 침상 외피를 씌우며 까진 약지가 거의 나았습니다.
- 밥먹으러 갈 때 계속 제식을 걸려서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9일차
이 날은 사격이 있었습니다. 공격군장 차림에서 가방 왼쪽 주머니에 총기분해도, 오른쪽 주머니에 500mL 물, 가방 안에 방탄헬멧을 넣은 상태로 영점사격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동하면서는 하이패스 차도 위로 지어진 육교를 처음 건너게 되는데, 다들 다리 밑으로 지나다니는 민간 차량을 보면서 “와 바로 뛰어내리고 싶다”같은 곡성이 나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로 이 다리는 정식 이름은 소룡육교, 별칭으로는 통곡의 다리라고 하는 유명한 다리입니다.
시골 마을을 구경하면서 민가를 지나가다 보면 영점사격장에 도착합니다. 사전에 교육대로부터 3km라고 안내받았고, 실제로도 그 정도 되어 보이는 거리를 이동해야 해서 꽤 멀었습니다. 사격장에 도착해서는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됩니다.
- 먼저 도착한 조가 사격을 마칠때까지 기다리면서 군용 이어플러그를 지급받고 주의사항 등을 전달받습니다.
- 순서가 되면 이어플러그를 착용한 상태로 안전검사를 거친 뒤 사격장에 차례로 입장합니다.
- 입장 후에도 본인 순서가 올 때까지 앞사람 동작을 지켜보면서 대기하다가, 본인 순서가 다가오면 컨트롤 타워의 지시를 큰 복명복창과 함께 이행합니다.
- 사격 과정은 컨트롤 타워의 지시와 훈련병 중 차출된 전문부사수의 보조를 따라 (노리쇠 후퇴고정 - 탄알집 인계 - 탄알집 결합 - 조정간 단발 - 사격 개시 - 한발, 두발, 세발 사격 끝 - 조정간 안전)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자세는 엎드려쏴로 제한됩니다.
- 한 번의 사격 과정이 끝나면 (사수 소총놓고 무릎앉아 대기 - 표적지 확인 - 크리크 조정)의 과정을 거치고, 이 과정을 세 번 반복합니다.
- 사격이 끝나면 본인 표적지를 들고 사격장에서 나와서 (노리쇠 후퇴고정 - 약실확인 - 노리쇠 전진 - 격발 - 3회 후퇴전진 - 격발) 순서의 안전검사를 실시합니다.
- 안전검사 후 들고 온 표적지로 평가를 받습니다. 3차사격중 표적지 안의 원에 세 발중 두 발 이상을 명중하면 합격, 그렇지 않으면 불합격으로 재사격 판정입니다.
- 먼저 아침식사를 하고, 합격한 사람은 총기손질, 불합격한 사람은 재사격으로 위 과정을 합격할 때까지 반복합니다.
가까이서 듣는 사격 소리는 뭔가 폭발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 소리가 납니다. 몸이 움찔거릴 정도로 커서 대기하는 도중 다른 사람의 사격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제가 쏠 땐 퉁, 퉁, 퉁 하는 정도로 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이어플러그를 잘 착용해서인지 쏘고 나서 이명도 없었습니다. 총기사격 관련해서는 다음을 특기하고 싶습니다.
- 반동은 누가 조용히 어깨를 세 번 밀치는 정도의 느낌이었습니다.
- 총구 화염은 게임이나 영화에서의 묘사와 달리 남이 쏠 때나 제가 쏠 때나 하나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 의외로, 탄피받이 없이 훈련이 진행됩니다.
겨우 25m이긴 하지만, 저는 굉장히 잘 쐈습니다. 첫 사격 이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표적지를 확인하러 갔을 때 총알이 지나간 구멍이 오밀조밀하게 모여있었고, 놀랐습니다. 분대장이 “오~… 훈련병 잘 쏘는데? 크리크는 우로 3, 아래로 7 조정해. 훈련병은 잘 쏘니까 호흡만 신경써요”라고, 그리고 그 말을 듣던 전문부사수 훈련병이 “원래 저런 소리 잘 안 하시는데 진짜 잘 쏘셨나 봅니다”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별 소리 아니지만 그 날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저는 1차사격 때 3발 중 2발이 표적지 원 안에 명중해 사격은 한 번에 통과했습니다. 1차 합격자 비율은 1/3 정도였고, 다른 동기들중 몇몇분은 2차, 3차, 4차 사격에 가서도 불합격을 받아 36발가량 쏘는 훈련병도 있었습니다. 한 번의 사격 과정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대기하면서 아침식사가 끝나고 같이 합격한 동기와 훈련이 끝나길 기다리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4차 사격이 지나면 시간관계상 때문인지 더 이상 재사격 훈련은 이루어지지 않고 교육대로 복귀해 불합격한 사람만 따로 불러내 보충교육을 진행하는 식으로 교육을 대신합니다.
생활관으로 복귀하는 길에는 오아시스라고 다기능 작전모 안에 열 식히는 용도로 얼음을 3~4개 넣어서 이동했습니다. 걷다보면 얼음이 녹으면서 물이 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모자 뒤에서 물방울 뚝 뚝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이 물조차 말라가기 시작할때 쯤 육교를 넘어가게 되면 얼음을 다시 모자 안에 넣어서 이동하다보면 교육대로 복귀하게 됩니다. 돌아와서 생활관으로 복귀하기 전 연병장에서 “이 날 공격군장 무게는 총기를 합해서 5.8kg였다. 힘든 사람도 있었을 텐데 수고했다.”라는 소대장의 격려를 듣고 생활관으로 복귀했습니다.
이 날 부식은 육포 느낌의 건조소시지와 눈을감자, 밀키스 500ml 캔이었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저녁에 쓰레기 버릴 때 상자를 잘못 뜯다가 오른쪽 엄지손가락 손톱이 살짝 들리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10일차
새벽 1시 불침번으로 시작한 하루로 간만의 휴일이었습니다.
이 날은 비가 와서 밥먹으러 갈 때마다 판초우의를 쓰고 갔습니다. 판초우의는 한 번 쓰면 교육대 강의장 옷걸이에 걸어 말려두는데, 온 생활관 판초우의가 뒤섞여있어서 밥을 먹으러 갈 때마다 다른 판초우의를 쓰게 됩니다.
오후 2시에는 PX를 갔습니다. PX는 일반적인 동네 마트같은 느낌이었고, 바구니를 들고 일정 시간동안 쇼핑을 합니다. 저는 독도 화장품 2개, 그리고 로카티 2벌 정도로 5만원 정도를 썼는데 다른 분은 선물용으로 14만, 15만, 많게는 60만원어치를 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주로 부식으로도 받을 수 없는 맥콜, 캔커피, 과자류가 인기가 있었고 화장품과 로카티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생활관으로 돌아와서는 또 한 번, 오후 3시부터 1시간동안 휴대폰을 받았습니다. 저는 첫 30분동안은 부모님께 안부전화를 드렸고, 나머지 30분은 지인에게 생존신고를 하고 밀린 웹툰을 보며 시간을 보냈는데, 시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웹툰은 내용이 잘 들어오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분들도 비슷하게 전화, 유튜브, 인스타 등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후에는 TV시청이 허용되었는데, TV는 한 대고 사람은 많다 보니 의견을 수렴하던 도중에 어떤 동기의 “비 오는 날에 올드보이 보면 딱인데”라는 말이 있었고 호응이 좋아서 진짜로 올드보이를 보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정확한 시간순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헌혈할 인원과 종교행사에 참여할 인원 조사가 있었습니다.
11일차
세척조가 있는 휴일입니다.
세척조는 아침점호부터 세척준비를 위해 인원보고까지만 참여하고 열외되어 하러 세척 준비를 하러 갑니다. 배식과 관련해 설거지와 뒷마무리를 담당하게 되는데, 구체적으로는 국식판, 굿그릇, 멀티, 바트, 쓰레기의 포지션으로 참여합니다. 포지션은 제 생활관의 경우 사전에 뽑기로 정했고, 각 포지션별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름 | 역할 |
---|---|
식판 | 말 그대로 식판을 설거지합니다 |
국그릇 | 말 그대로 국그릇을 설거지합니다 |
멀티 | 특별한 역할이 없는 보조인원입니다. 병목현상이 생기는 이곳저곳에 불려가게 됩니다. |
바트 | 제일 힘듭니다. 음식물 쓰레기, 즉 짬통을 비우는 역할을 합니다 |
쓰레기 | 제일 편합니다. 그때그때 나오는 빵 봉지나 요거트 용기 쓰레기를 담는 역할로, 봉투를 들고 가만히 서있으면 됩니다 |
마무리 청소가 굉장히 힘들고, 한 번 한 번 세척조를 진행할 때마다 옷에서 짬내가 납니다. 세척조는 한 번 차출되면 그날은 세척만 하다가 끝난다고 봐도 됩니다. 특히 세척상태를 검사하는 부사관과의 조합이 중요한데, 한 번은 FM 훈육지도관에게 걸렸다가 청소를 정말 열심히 해도 밥풀 한두개 보이면 청소 다시 하라는 식으로 나와서 의미없는 청소를 2~3번 다시 한 적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세척까지 끝나고, 교육대 강의실로 이동해 세척때문에 못 본 다음날 화생방 영상교육을 받았습니다. 스피커에서 소리가 나지 않아 소리 안 나는 대로 영상을 시청했습니다.
이 날 샤워가 매우 기분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 이 날의 일화
- 세척 끝나고 훈육지도관에게 아침식사에 같이 나온 아이스크림 짬처리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한 생활관 동기가 냉동보관 하려고 분대장들에게 검은색 냉동고 써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분대장이 누가 줬냐고 역으로 물어봤고 계급과 인상착의를 말하니까 분대장 3명이 동시에 “아 씨-발 그 장애인년”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은 분대장들 통해 폐기되었습니다.
- 타 중대 분대장 중에, 수저와 컵 씻고 있는 곳에 먹고 남은 국 붓고 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생활관 동기중 한 명이 찾아나가서 따질려다가 주변에서 말려서 참고 넘어갔습니다.
- 점심시간 세척 나가기 전에 생활관에서 매트를 정리하지 않고 갔다고 벌점을 받았습니다. 하루종일 고생했는데 김 빠지는 소식이었습니다.
12일차
그 유명한 화생방 훈련이 있는 날입니다.
화생방 교장은 교육대에서 거리가 4km 정도로 꽤 멉니다. 사복차림이라면 걸어갈만 한 거리이질지도 모르지만 공격군장 차림에 총을 메고 2열로 맞춰 왕복해야 하는게 큰 부담이 됩니다. 때문에 전날 이 점을 강조하고 좀 더 천천히 걸어갈 차등제 인원을 지원받는데, 제가 지원해봤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교육은 핵공격에 대비하는 법과 방독면 착용법을 알려주고 연습, 그리고 검사를 맡는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방독면은 9초 이내 착용을 목표로 하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힘든 기준이다보니 다들 방독면 착용법을 제대로 숙지했는지 정도만 검사를 하고 넘어갑니다.
방독면을 착용한 느낌은, 시야가 조금 제한되고 숨쉬기가 많이 어려워지는 느낌입니다. 폐활량이 안 좋은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는 정도입니다. 실제로 사고가 날 뻔했는데, 훈련소 동기 중 한 명이 방독면 착용 후 숨쉬기 어려워하다가 스스로 방독면을 못 벗어서 주변사람들이 급하게 벗겨내는 일이 있었고, 침흘리며 숨쉬기 힘들어하는 이 훈련병을 옆에서 교육을 진행하던 중대장이 훈련에서 열외시키는 일이 있었습니다.
방독면 착용법 교육이 끝고서는 에어컨이 있는 실내공간에서 아침을 먹었고, 식사 후에는 가스실에 들어가는 훈련이 있었습니다. 가스실에 들어간 느낌은, 모기장 연기가 가득차있는 어두운 창고 같은 느낌이었고, 전에 안내받았던 대로 방독면을 벗으라는 지시가 없고 방독면 착용에 이상도 없었어서 가스를 크게 들이마실 일은 없었습니다. 가스실 안에서는 정화통만 탈부착하고 끝났습니다.
다만 가스실에 들어가기 직전과 직후에 가스를 조금 마셔보긴 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캡사이신보다 좀 더 더럽게 매운 느낌과 입 안에서 뭔가가 씹히거나 목에 뭔가 걸리는 느낌 정도를 느꼈습니다. 가스실에서 나와서는 팔을 위아래로 크게 흔들며 천천히 이동해서 입자를 털어냈고, 피부에 가스가 묻어서 따가운 경우 물로 씻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 때 얼굴을 절때 만지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저는 괜찮았는데, 실제로 피부 엄청 빨개지고 따가워하는 훈련병이 꽤 있었습니다.
생활관에 돌아와서는 오침 후 수류탄, 대인 응급처치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고 휴식시간을 잠깐 가진 뒤 저녁식사와 함께 하루를 보냈습니다.
아마, 사실 전에 소대장이 직접 화생방 교장에서 잘 못 걷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어서 빠른 처리가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소대장은 떠나고 2분 정도 뒤에 훈련병 통제중인 인원 제외한 모든 분대장을 소대장실로 불렀고, 이 맥락상 아마 관련 주의를 줬던 것 같습니다.
이 날 부식은 Tartelettes 딸기맛과 맥스봉 소시지, 코카콜라 제로 캔이었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훈련소 동기가 교장을 다녀오고나서부터 오른쪽 발목의 염증으로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밥먹으러 갈 때에도 업어서 이동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분대장에게 “응급실이든 뭐든 보내야 하는 것 같다” 보고하자 “사정은 알겠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게 제한되어 있다. 응급실은 너네가 생각하는 그런게 아니다.”라는 답변을 받았고, 답답해서 소대장한테 한번 더 보고했더니 분대장 둘을 데리고 생활관으로 찾아왔습니다.
- 소대장은 이 훈련병에게 한 번 일어서보도록 하고, 제대로 못 일어나자 현재 증상과 이전에 비슷한 병이 있었는지 등을 확인하고는 휴대폰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더니 본인 계급과 이름을 대고 지구병원을 예약함과 동시에 분대장을 시켜 임시로 목발을 받아왔습니다. 더 필요한 조치 있냐고 물어보고 없다고 하자 생활관을 나섰고, 저희는 박수를 쳤습니다.
13일차
수류탄 훈련이 있는 날입니다.
시간은 메모를 남기지 않아 잘 모르겠는데, 불침번으로 시작한 하루였습니다. 감기와 불침번이 겹치니 정말 힘들었는데, 진짜로, 몸이 늦게 반응하고 계속 눈이 감기는 정도였습니다.
수류탄 교장은 화생방 때보다 거리가 좀 가깝다고 안내를 받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여전히 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수류탄 투척 훈련은 영점사격때와 마찬가지로 조와 사로를 교번대로 편성해서, 컨트롤 타워의 지시를 큰 복명복창과 함께 단계별로 따르는 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수류탄 투척 차례가 오면 분대장이 이름을 불러주며 “할 수 있다”, “잘하고 있다”는 식으로 열심히 케어를 해 주고, 수류탄 투척 과정은 “수류탄 인계 - 표적 확인 - 안전클립 빼 - 안전고리에 손가락 넣어 - 안전고리 빼, 던져! - 하나, 둘, 셋, 표적확인”이었습니다. 본인 순서가 될 때까지의 대기시간동안 이 동작을 계속 반복하며 연습합니다.
수류탄을 4번 던지면서 한 개라도 교장에 설치되어있는 철조망을 넘어가면 합격이지만 4개 모두 기준을 넘지 못하면 보충교육 대상입니다. 대부분은 힘들지 않게 합격을 받지만 제 경우가 조금 위험했는데, 저는 처름 수류탄은 바닥에 박아버렸고, 나머지 두번째와 세번째도 기준을 못 넘겼지만 마지막을 간신히 성공해 일단 합격했습니다.
수류탄 훈련이 끝나고 교육대에 도착했는데, 중대장이 1중대 인원을 연병장으로 따로 빼내서 “내가 뒤에서 계속 보고 있었는데, 군기, 제식 완전 개판이야. 장난해? 놀러왔어?”라는 식으로 주의가 있었습니다. 저는 상황이 이해가 가서 불만없이 듣고 있었는데, 중대장이 마지막을 “여러분 화내서 미안하고~”라는 식으로 김 빠지게 끝냈습니다. 조금 의아했습니다.
이날 훈련이 끝나고 먹었던 아침식사가 역대급으로 별로였습니다. 순두부와 간장, 깍두기, 기름 둥둥 떠다니는 이상한 찌개, 계란말이 하나였는데, 안먹겠다는 생활관 동기도 있었고 또 그런 반응이 공감이 가는 정도였습니다.
오침 후에는 강의장으로 이동해 각개전투 영상을 시청했고, 휴식시간을 가진 뒤 저녁식사를 먹고 하루를 마쳤습니다.
이 날 부식은 비락식혜 500mL 한 캔이었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치통 호소하던 훈련소 동기는 이 날 지구병원 가서 신경치료를 받았습니다. 돌아와서 하는 말로는, PX쪽에서 같이 간 키 큰 훈련병이 도망갔다가 20분만에 분대장에게 잡혀 돌아왔다고 합니다.
14일차
3km 뜀걸음 측정과 각개전투 자세 연습이 있는 날입니다.
이 날은 불침번도 없었고 잠도 간만에 푹 잤지만, 여전히 하루종일 피곤한 하루였습니다.
아침점호 후 3km 뜀걸음 측정이 있었습니다. 측정 시작 전에 뜀걸음을 열외하고 체력단련을 대신 받을 사람을 따로 지원받았고, 저는 전 1.5km 뜀걸음 측정때 너무 힘들었어서 처음부터 열외했습니다. 체력단련은 국군도수체조로 간소하게 진행됐습니다.
각개전투는 낮은포복, 높은포복 등 신체적인 부담이 주어지는 자세가 꽤 있었습니다. 훈련이 있고나서 서있을 때 잠깐 어지러움이 올라오는 정도의, 그동안의 훈련중에서는 가장 높은 강도로 진행되었습니다. 교육은 분대장의 시범을 먼저 보여준 후 훈련병들을 오와 열로 맞춰 정렬시켰고 “각개 힘든거 사회에서 안 배웠어? 밀어! 당겨! 밀어! 당겨!”라며 밀어붙이는 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각개전투는 각 동작이 끝나면 10분정도 휴식을 거쳤습니다. 이때 두 가지가 기억에 나는데, 하나는 쉬는 중에 “야 난 다음주에 간다~ 뺑이쳐라~”라며 현역 훈련병을 도발하는 훈련병이 있었다는 것, 또 하나는 그 와중에 훈련소 풍경이 굉장히 평화롭고 예뻤다는 겁니다.
오침시간에 감기를 사유로 오침을 건너뛰고 의무실을 신청해서 갔다왔습니다. 의무실에는 대기자가 굉장히 많았고, 또 재미있었던 게 의무실 의자 곳곳에 “난 갈게 너흰 각개”, “배식조가 꿀이다” 같은 낙서가 많았습니다. 진료 중에는, 감기를 진료받는 김에 다음날에 행군이 예정되어 있어서 허리가 아프다는 말로 파스와 함께 다음날 행군 차등제를 받았습니다.
부식은 허니버터바게트와 몬스터 블랙 한 캔이었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제 훈련소 기수에 어떤 축구선수가 있다고 들었는데, 실제로 뜀걸음 기록측정 때 압도적인 1등으로 들어오는 한 명이 있었습니다.
3주차
15일차
각개전투 실습과 행군을 하는 날입니다.
컨디션이 정말 별로였습니다. 목이 붓고 굉장히 졸렸습니다.
새벽부터 총기함에서 총기를 꺼내 집합 후 각개 훈련장으로 출발했습니다. 각개전투는 조 별로 준비된 장애물을 단계별로 통과하며 뛰어가는 식입니다. 타이어를 엎드려서 지나가거나 철조망 밑을 하늘을 보고 누워서 지나가는 등의 과정이 있었고, 마지막은 또 소리를 지르며 뛰어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각개전투가 끝나면 생활관별로 적 조우, 아군 부상, 6시방향 적 항공기 출현 등 각 세부 전시상황에 대한 대응을 차례대로 평가받습니다. 어렵지는 않고, 사실 훈련중에서는 가장 재미가 있는 편이었습니다.
각개전투 평가가 끝나고는 강의장 앞에서 잠시 대기하다 아침을 먹었고, 식사 후에는 초병 임무를 교육받았습니다. 초병 강의가 끝나고는 소대장에게 총검술을 교육받았는데 이때 의아했던 것이 요즘엔 CQB라는게 있다며 소대장부터가 총검술을 별로 안 좋아하는 눈치였습니다. 총검술은 찔러, 때려, 돌려 등의 자세를 몇 번 반복하고 검사 없이 끝났습니다.
각개전투가 끝나고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오침 시간을 가졌습니다. 바로 다음에 행군이 예정되어 있어서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동안 푹 잘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피로가 많이 풀리게 됩니다. 뒤에는 저녁식사를 했고, 이때 밥먹고 나오는데 딱 해가 보기좋게 넘어가려 하고 있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구름에 진 그림자, 시야의 왼쪽과 오른쪽에서 대비되는 주황색과 보라색의 밀도 등 풍경이 정말 예뻤던 것이 기억납니다.
행군은 군장에서 수통을 빼고 방독변 주머니에서 방독면을 빼는 등 짐을 최대한 가라로 싸려고 했던 것이 생각납니다. 행군은 저녁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뜀걸음 코스를 이용해 6회 왕복하는 식으로 진행되었고, 1회 왕복에는 45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행군 짐 검사가 있기는 했지만 최대한 풀어주려고 했던 훈련소의 당시 분위기 탓인지 모두 짐검사를 받지는 않았고, 또 1회차 행군 이후에는 날씨가 너무 덥다며 생활관에서 방탄모를 다작모로 바꾸고 다시 나오도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이 때 “이건 지금 짐을 최대한 덜어서 나오라는 소리야”라며 생활관에 짐을 빼고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제로, 모여서 짐검사를 한 번 더 하고 출발하지는 않았습니다.
처음에 행군을 시작할 땐 북두칠성이 보인다며 나름 즐기며 시작했지만 야밤에 다칠 위험이 있다며 분대장이 전방주시와 정숙을 통제했고, 1회차 중간 정도가 지나면 진짜 모두 아무말 없이 걷기만 했습니다. 제 경우에는 1회차가 지나고 너무 재미가 없어져서 나중에는 외국어로 발걸음을 세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4회차 행군이 끝나고는 휴식시간에 파워에이드와 피자빵, 육포를 받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졸리고 피곤한 탓에 입맛이 없어서 파워에이드 조금과 피자빵만 먹고 말았습니다.
5회차 행군 때에는 휴식시간에 잠깐 눈 붙이고 있었더니 옆에 있던 다른 생활관 분에게 “사탕 줄까요? 잠 깨게.”라더니 슈퍼사워 사탕을 하나 받았습니다. 쓰레기는 제가 챙기려고 하니까 “쓰레기는 주세요. 제가 버릴게요” 하고 가져갔습니다. 양아치상이었고, 사실 딱 그 훈련병이 문제아라던 소문이 있었지만, 어쨌든 그때 겪었던 친절이 기억에 남습니다.
행군이 끝나고는 햇빛에 건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땀에 젖은 조끼와 군장을 바닥에 내려놓고 생활관으로 들어갔습니다. 행군이 끝나고는 신라면과 구운 계란, 포카리 스웨트를 나눠줬는데 저는 짐만 될 것 같아 일부로 안 받았습니다. 다른 동기 분들은 주로 포카리 스웨트만 받고 왔던 것 같습니다.
완전 군장 하고 간 사람들 중에서 2명정도 부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졸려서 걷다가 배수로에 발이 빠진 사람이 있었다고 하며, 근처에 있던 생활관 동기 말로는 무슨 총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행군이 끝나고 이등병 분대장에게 “뜨거운 물 나오도록 내가 말해뒀으니까, 가서 편하게 하고 싶은 만큼 샤워하고 와라”라는 말을 듣고 목욕탕에 갔는데 찬물이 나왔습니다. 전문연구요원이었던 같은 생활관 동기가 진심으로 말없이 화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취침시간은 새벽 4시부터 다음날 아침 11시까지 주어졌습니다. 춥고 코골이가 시끄러워서 2번정도 깼음에도 시간이 꽤 돼다보니 기상하고 나서 컨디션이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이 날의 일화
- 행군 중에는 총을 군장 탄알집에 꽂고 다녔습니다. 훨씬 편했습니다.
- 행군 도중의 맑은 날씨 덕분에 북두칠성이 보였습니다.
16일차
행군 후 장구류를 세척한 날입니다.
11시에 기상해서 일어나자마자 점심을 먹고 전날 내려놓은 조끼와 군장을 가져왔습니다. 생활관에 돌아와서는 전투조끼, 탄창, 방탄모, 수통을 세척하고, 수통 뚜껑, 탄창 5개분의 아랫면과 방독면에 묻은 흙을 닦아내고 검사를 받았습니다. 조끼, 방독면 파우치는 다시 물에 적셔서 생활관 옆 바닥에 생활관별로 정리해서 말렸습니다. 이 조끼와 파우치는 저녁시간이 지나서야 회수했습니다.
훈련소에서 배식과 관련해서 각 생활관별로 세척조 또는 배식조를 한 번씩 담당하게 되는데 생활관 수가 부족해 각 생활관별로 한 명씩을 대표로 보내 당직책상 앞에서 한 번 더 일할 생활관을 가위바위보로 정합니다. 제 생활관은 막내가 대타로 나갔는데 졌고, 덕분에 다음날 배식조 포지션을 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배식 포지션은 식판과 수저, 밥, 반찬, 국, 부식 등이었으며 대부분은 반찬입니다. 제 생활관의 경우 사다리타기로 뽑기 순서를 정하고 방탄모에 쪽지를 넣어서 뽑기를 했고, 저는 6번째 순서로 국을 뽑았습니다.
그 외에는 이 날 특별한 일정이 없었고, 적당히 놀고 청소하고 저녁점호를 받으며 여유롭게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날의 일화
- 이 날부터 “드디어 집에 간다”와 같은 분위기가 좀 있습니다.
17일차
오랜만의 휴일이지만, 전날 예고된 배식조가 진행됐습니다.
아침점호 때 훈련이 다 끝나고 나서부터 수료 전까지 사고로 인한 퇴소가 많이 발생하니 무사히 수료하고 싶으면 수료할 때까지 조심하라는 안내가 있었습니다. 이 기간동안 분대장의 통제도 약해지고, 훈련병들 사이에서의 감정싸움도 많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배식조는, 육체적 노동의 강도로도 비위상으로도 세척조보다 훨씬, 훨씬 편합니다. 모자와 비닐장갑, 토시를 껴야 하는 것 외에는 불편함도 없고, 말 그대로 배식하는 것 말고는 해야 하는 일이 달리 없으며 작업 분위기가 어수선하지도 않습니다. 세척조는 밥을 제일 처음으로 먹지만 배식조는 가장 마지막에 먹기 때문에 양을 마음대로 가져갈 수 있다는 특혜가 생기는 것은 덤입니다.
1.5km 뜀걸음 불합격자에 대한 체력 보충훈련이 이 날 있었습니다. 교육 진행자의 “훈련소에서 뭐라도 얻어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라는 말과 함께, 스쿼트, 푸쉬업, 팔벌려높이뛰기, 누워서 파트너 다리잡고 다리 들어올리기 등을 각각 10회 또는 20회로 2~3세트 정도 진행했습니다. 다만 강도가 높지는 않았습니다.
점심을 먹고 와서 도중에 보다 끊겼던 영화 올드보이를 엔딩까지 봤습니다. 이 때 처음 본 영화였는데 인상깊었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군대에서는 식사량을 1.2인분에서 1.5인분 정도로 준비하기 때문에 매번 엄청난 양의 먹지도 않은 음식물 쓰레기가 나옵니다. 가져가지도 못하게 해서 이날은 멀쩡한 콘푸로스트 3봉지를 그냥 폐기했습니다.
- 오랜만의 따듯한 물 샤워를 할 수 있었습니다. 별게 아니지만 씻고 침대에 눕는데 그 덕에 행복했습니다.
18일차
간만에 여유로운 휴일이었습니다.
171번 훈련병이 빨래를 넣으려고 문을 여는 순간 관물대가 떨어졌습니다. 분대장에게 보고하니 다른 분대장이 드릴을 갖고 와서 관물대를 고정하고 갔는데, 이때 분대장이 “야 내가 인간 드릴이야. 하… 나 이런거 왜이렇게 잘하지?”라고 하면서 작업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날은 태풍이 있어서 비바람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식사를 하러 갈 때에도 판초우의를 쓰고 가야 했는데 생활관 인원 몇 명이 귀찮다고 판초우의 없이 생활복 차림으로 갔다가 오는 길에 “야! 너네 몇 중대야!” 소리치면서 달려오던 분대장에게 걸려서 주의를 받았습니다.
이 날은 주요 훈련이나 교육도 끝났고, 훈련복을 빨래하고 온 것 말고는 별 일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생활관에서 남은 과자를 모아 먹으며 떠들며 시간을 보내거나, 제 경우에는 가져갔던 책 독서록을 쓰거나, TV 시청이 허용되고 나서는 손님, 아가씨, 파우스트 등 영화를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제 왼쪽 침상의 훈련병 머리가 길어져서 ‘잘리나?’ 하고 있을 때, 생활관 인원이 담합해서 한 명의 분대장에게 이건 봐주면 안되냐고 갖가지 설득을 하고 다녔고, 나중에 “어 저정도는 괜찮아” 한 마디를 받아냈습니다. 실제로, 이 훈련병은 머리를 잘리지 않고 무사히 수료했습니다.
19일차
7월의 첫 날로, 훈련이 끝나고 맞이하는 첫 평일입니다.
아침식사 후에는 장구류 수를 확인하고, 파스를 지급받아 침대 낙서를 지웠습니다. 침대에 낙서를 하는 인원이 있나 싶겠지만 제 생활관에도 몇 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 생활관에서 파스를 너무 뿌려대서 냄새가 심했고, 우리 생활관에서 “파스 그만 뿌리라고!!” 하고 소리쳤다가 옆 생활관 사람들과 싸울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좋게좋게 끝나기는 했지만, 이전까지 쌓인 불만에 대한 생활관 단위의 공감이 있어서 이 일을 계기로 저희 생활관에서 마음의 편지를 작성하기로 했습니다. 전문연구요원 분들의 힘을 받아 최대한 심혈을 기울여서 작성했고, 한 명이 대타로 나가 마음의 편지 함에 몰래 넣고 왔습니다.
남은 시간에는 일과가 많지는 않았고, 생활관별로 생활복 상의와 하의 한 벌씩 가져가서 단체로 세탁했습니다. 다만 173번 훈련병 자리에서 관물대가 떨어지는 일이 또 있었는데, 이번에는 드릴이 없다며 고쳐주진 않았고 임시로 알아서 잘 사용해보라는 식으로 넘어갔습니다.
여유로운 시간이 다 가고, 저녁점호 후에 소등 후에 침상에 누웠는데 병장 분대장 한 명이 당직책상에서 “본 분대장도, 오늘이 마지막- 근무일입니다.” 방송을 했고, 모든 생활관에서 박수가 나왔습니다. 그러고는 훈련소 관례인지 본인에 대한 Q&A 10분간 받겠다고 했습니다. Q&A 내용으로는 엔믹스 오해원이 이상형이라는 것과 가장 좋아하는 분대장은 누구누구라는 식의 내용 정도가 있었습니다.
이 날 부식은 프링글스 스모크바비큐 맛과 몬스터 화이트 제로슈거였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저녁 청소시간에 화장실 청소도구를 갖다놓으려고 전우조와 정말 늦게 교육대 건물 밖으로 나갔다가, 분대장 사이에서 전달이 안 되고 문 먼저 닫힐까봐 뛰어서 나갔다 온 적이 있습니다.
- 173번 훈련병이 비 와서 밖에 나갈일좀 없게 해달라며 날씨 부적을 만들어 달았습니다.
- 남는 시간에는 서로 명찰 바꾸고 놀고, 남은 부식을 먹으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20일차
새벽 4시 불침번으로 시작한 하루였습니다. 이 시간의 불침번은 8시간의 취침시간을 6시로 줄여주는 최악의 시간대입니다. 하나 웃겼던게, 이날 암구호가 “문화와 범퍼, 캐린더”였는데 평소보다 길어서 기상 후에 확인해보니까 원래 “범퍼와 캐린더”였던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추측으로는 “문어가 범퍼, 답어가 캐린더”라고 안내를 받았는데 ‘문어’가 뭔지 몰라서 “문화와 범퍼”로 변질되어 전달된 것 같습니다.
불침번 도중에 가져온 책을 꺼내 읽었는데 분대장 사이에서도 비호감이던 훈육지도관이 와서 “불침번! 불침번! 책보지 마세요! 불침번 설 땐 딴짓하지 마세요!”라며 주의를 주고 갔습니다.
3주차가 되고 나갈 때가 되니까 다들 많이 친해지고 조용했던 사람들도 같이 떠들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동그랗게 모여서 부식 받았던 것을 까놓고 이런저런 주제로 떠들거나, 서로 다리를 올려두고 떠들거나 하는 등 정말 편한 분위기였습니다.
1시 반부터 1시간 반 동안 북한학 박사의 강연을 들었습니다. 주제는 “힘에 의한 평화가 중요한 이유”였고, 세부적으로는 주로 북한의 최근 동향과 군의 준비태세와 같은 내용이 있었습니다.
전날 마음의 편지는 소대장에 의해 묻혔습니다. 사실, 다른 마음의 편지도 조금씩 쌓여 있던데 소대장이 소대원을 강의실로 불러놓고는 “훈련이 끝나니까 서로 찌르고 있다. 이거 제대로 가면 한 6명은 퇴소당할 것 같다. 하지만 난 너희들에게 수료의 단맛을 보여주고 싶다. 너희들 모두 3주 고생했기 때문에 난 이걸 조용히 묻을거다. 문제 있는 애들은 따로 불러서 이야기할테니 내 결정에 토 달지 마라”라며 해산시켰고, 모였던 소대원은 말없이 각자 생활관으로 돌아갔습니다.
21일차
수료 하루 전 날입니다.
이젠 진짜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는 것을 모두가 실감하는 시기입니다. 일정이 많지는 않았고, 아침점호 후 총기를 옆 교육대 무기고에서 반환하고 훈련병 전 인원이 연무관으로 이동해 수료식을 위해 발을 계속 맞추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때 발이 안 맞아서 앉았다 일어나기가 10번 정도 있었는데, 훈련소에서 받은 가장 강도 높은 군기훈련이었습니다.
마지막이라고 ‘훈련병의 날’이라는, 레크레이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학교 축제와 비슷한 느낌이었고, 26연대는 시설이 낙후화되어있다며 27연대 건물을 빌려 진행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때 본 27연대 건물은 26연대에 비하면 차이가 꽤 났습니다. 26연대는 오랫동안 보수되어온, 반대로 말하면 낙후화되어있는 느낌이라면 27연대는 동네 학교 시설 정도로 신식이고 깨끗해 보였습니다.
강의실에 훈련병을 모이자 빠삐코 아이스크림이 나왔습니다. 훈련병의 날이 진행되면서는 훈련병들이 직접 군가에 맞춰 안무와 연극을 하거나, 중대장 훈련병 넷을 불러 장기자랑을 시키거나, 분대장이 노래를 부르거나 하는 식의 구성이었습니다. 그중에 특히 중대장 훈련병이 제로투를 추거나 분대장이 고음을 지를 때 호응이 굉장히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훈련병의 날이 끝나고 생활관으로 복귀한 뒤, 4~5시쯤 소대장이 소대원을 강의실로 불렀습니다. 소대장은 소대원 앞에서 “군인의 연이 닿은 사이로서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불렀다.”라며, 훈련소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연달아 두 번 터지면서 교육대장과 연대장 등이 이번 기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는 점, 본인은 오토바이 절도나 학교폭력 등 양아치로 살다가 20대가 되고 뭘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이 드는 중에 군인이 되어보니 정해진 규율만 따르면 되는 생활이 마음에 들어서 부사관으로 지원해 너희 소대의 소대장으로 만나게 되었다는 점 등 여러 썰을 풀어주셨습니다. 몇 가지 이야기가 끝나고 수료식에 참여가 어렵다며 마지막으로 소대장이 소대원 모두에게 한 번씩 악수를 청했습니다. 제 차례가 되었을 때 잡았던 소대장 손 느낌은, 손바닥이 부드럽고 손가락은 거칠었지만 온기가 있는 전형적인 어른의 손이었습니다. 생활관에 돌아와서는 저녁점호 전에 짐을 싸뒀습니다.
저녁점호 후에는 분대장들이 각 방으로 찾아와서 마찬가지로 몇 가지 썰을 풀고 갔다고 합니다. 간접화법인 이유는 분대장이 생활관 방문한다고 해서 같이 기다려봤다가, 피곤해져서 먼저 잤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일어나서 듣기로는 분대장이 차례대로 방문해서 훈련소 빌런 등 이것저것 썰을 풀어줬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아쉽고 먹먹한 느낌이 있었습니다. 훈련, 교장, 생활관 다 싫었지만, 훈련받을 때 다같이 아자아자하는 생활관 사람들의 분위기가 좋았고, 훈련소의 분위기가 제때 밥 먹으면서 스마트폰 없이 얼굴을 마주하고 간간히 떠들 수 있는게 꽤 건강하게 느껴져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물론, 생활관에서 운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입니다.
22일차
훈련소를 수료하는 날입니다.
아침점호 후 사이즈별로 생활복 반납이 이루어졌습니다. 생활관에 돌아와서는 칫솔, 활동화 등 전날에 조금 싸두었던 짐을 이날 캐리어로 옮겨 정리했습니다.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식사였던 아침식사는 정말 별로였습니다. 김, 밥, 국, 고기, 김치 정도로 나왔지만, 그래도 다 먹고 나왔습니다. 생활관으로 돌아와서는 세면세족 후 A급 전투복으로 환복, 캐리어를 끌고 교육대 건물을 나오며 차례대로 폰을 받았습니다. 이때 날씨는 맑고 더웠습니다.
2열로 정리가 끝나면 연무관 앞에서 생활관별로 건물 외곽에 캐리어를 정리해두고, 수료식 사열대를 맞춘 뒤 건물 복도로 들어가 9시 50분가지 잠시 대기시간을 갖습니다. 시간이 되면 베이스와 킥에 왼발을 맞추며 안으로 입장하고, 수료식은 전날 연습대로 제식을 맞추고 애국가, 육군훈련소가를 제창하면 끝납니다.
제 생활관의 경우 서로 사이가 좋았고, 수료식 끝나면 열외자들이 대기하고 있던 곳에 모여서 사진 찍고 헤어지자고 해서 전에 말 맞춰뒀던 대로 사진을 여러장 찍고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했어~” 등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집으로 출발해 짐을 풀고, 군번줄이나 고무링 등 각종 훈련소 물품을 정리해 뒀습니다.
- 이 날의 일화
- 부모님을 향해 손 흔들라고 할 때, 고개를 돌리자마자 가족이 있었습니다. 처음 든 생각은 “아니 여기 훈련소에.. 부모님이 왜 있지??”였습니다.
- 지레짐작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분대장 나이는 다들 04였다고 합니다.
수료 후 느낀점
글로 정리하면 짧은 기간으로 보이지만, 훈련소 환경이 너무 다른 곳이다 보니 체감 시간은 3주 이상이었습니다. 일상에서 한 달 반 또는 두 달을 보낸 것과 무게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집에 오고 나서부터는 분위기가 너무 평화롭고 조용해서 훈련소 생활이 조금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개인적인으로는 몸무게가 꽤 늘고, 가끔 꿈에서 가끔 분대장이나 같은 생활관 동기가 나오고, 강제 도파민 치료와 수면시간 교정 등을 비롯해 꽤 건강해져서 나왔다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몸무게의 경우 훈련소에서 몸도 많이 움직이지만 밥도 많이 먹어서 이게 찔까 빠질까 궁금했는데 결과적으로는 5kg 가까이 찌면서 중고학생 때부터 일정했던 관성을 깨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이례적인 고점을 찍었고, 도파민은 금방 원상복구되었지만 훈련소에서 교정된 수면시간은 지금도 나쁘지 않아서 10시 반, 11시 취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제 경우에는 코골이를 제외하자면 중대장, 소대장, 생활관 사람들 모두 나쁜 사람 없이 운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정신적으로는 건강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생활관에 재밌는 분도 계시고 전문연구요원 분들도 분위기를 건전하게 유지해 주셔서 좋았습니다. 다른 중대나 생활관에서 들리는 소식중에 문제아가 있다거나 분위기가 어두운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운이 좋았습니다. 분대장도 짬찌부터 적당히 군생활 흘렀으면 싶은 사람, 편의점 알바생처럼 눈이 풀려있는 사람, 모든게 다 짜증나는 사람, 군생활 정말정말 성실히 잘 하는 사람, 모두가 보는 앞에선 힘들고 엄하게 대하지만 훈련 일과가 끝나는 순간 굉장히 친절해지는 사람, 표정부터 모든게 여유로운 말년 병장 등등 다양한 유형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다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여러가지 운 덕에 훈련소에서의 기억이 나쁘지 않아서 저는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으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특히 훈련소의 흔적인 수면시간 관련해서 입소 전에는 새벽 1~2시에 자는 등 고통이 있었는데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